‘북페이백’(book payback·책값 반환제)이라는 책읽기 캠페인이 있다. 작년에 서울 서초구에서 처음 도입한 제도로 주민이 지역 서점에서 신간을 구입해 읽은 뒤 일정 기간이 지나 해당 지자체에 반납하면 책값을 돌려받을 수 있다. 시민의 책 읽을 권리를 신장하고 지역 서점을 살린다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환영받았다. 올해 7월에는 울산시가 가세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제도를 올 연말 전국에 확대하는 시범 사업으로 공표했다. 관료들이 서초구를 방문해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서울시 관보에는 제안자의 인터뷰까지 실렸고, 몇 언론에서 호평을 했다.
일견 참신한 정책 같아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별도 예산 확보 없이 추진하다 보니 도서관의 도서구입비가 거의 모두 투입되고 시에서 지원하는 도서구입비까지 끌어다 써야 했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는 사서의 전문적인 큐레이션이 들어설 자리가 거의 사라졌고, 도서관은 주식투자·재테크·처세술 등 반짝 관심을 끌다 금방 시효가 끝날 특정 분야의 책들로 채워져 갔다. 이 정책이 몇 년 동안 실시된다면 심하게 말해 도서관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캠페인을 활용한 재빠른 소수의 시민들은 서점에서 대강 훑어보면 그만인 책을 구입해서 적당히 이용하고 도서관에 버렸다고 볼 수 있다. 도서관 사서들의 큐레이션 능력을 묵묵히 신뢰하면서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던 시민들의 이용권을 박탈하는 이 캠페인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하긴 ‘북페이백’이 아니어도 평상시에 책을 읽지 않던 행정 관료들이 시민의 표만 의식해서 만든 캠페인들은 차고 넘친다.
독서운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학교의 독서교육도 책을 열심히 읽는 상위 5%에만 집중돼 있었다. 미래 사회는 학력(스펙)이 아닌 학습력(상상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이제 없을 것이다. 도서관을 평생학습사회에 꼭 필요한 공간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장의 교사들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낼 줄 알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독서교육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장년층의 독서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라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다 적극적인 독서운동이 필요하다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은 1134개(2019년 말)나 되고, 작은도서관은 6330개(2018년 말)나 된다. 공공도서관은 해마다 40, 50개씩 늘어나고 있다.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도 시설은 그나마 확충되고 있지만 운영 능력이 전혀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도서관들은 자치구 도서관과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들의 행정 체계조차 확립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숫자만 늘리는 것은 빨리 지양돼야만 한다.
한 도서관인은 도서관마다 있는 도서관운영위원회를 도서관위원회로 격상시켜 시민들이 직접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서관장 선임, 장서 구성, 프로그램 운영 등 도서관의 모든 일에 시민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행정직 공무원들이 도서관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사서들의 전문성이 발휘되기 어려웠다. 그러니 각 시·도마다 설립된 지역대표 도서관부터 ‘철학적 고민’이 담긴 운영 철학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공무원 한 사람이 도서관의 몰락을 자초하는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다. 도서관의 소중함을 절감한 시민들의 지혜와 열정이 모아진 도서관 운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에게도 미래가 있다.
-국민일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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