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11 11:08
‘북텐더’로 변신한 어느 사회학자의 동네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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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노명우 교수가 2018년 9월 2일 서울 연신내에 문을 연 ‘니은 서점’은 지난 2년 간 “지속 가능한 적자”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니은 서점은 “캠퍼스에 갇혀 있는 교수보다는 평범한 삶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대리하는 헤르메스이고 싶어”한 저자의 바람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에서 책장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북텐더’ 노명우 교수다. 출판사 클 제공
(사진3) ⓒ 김승태



‘이러다 잘 될지도 몰라, 니은 서점’에는 다윗(책에선 다비드로 표기)과 골리앗 비유가 두 번 등장한다. 독립 서점 입장에서 골리앗은 먼저 체인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다. 이들은 너른 공간과 무료배송을 무기로 갖춘 덩치들이다. 또 다른 골리앗은 스마트폰이다. 덩치는 작아도 더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는 상대다. 책 읽기 자체를 방해해 모든 서점의 공적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책은 빌려 읽으면 된다’ ‘책값이 비싸다’는 세간의 인식도 다윗을 끊임없이 흔들어 댄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러다…’는 독립 서점의 생존을 위협하는 골리앗을 포함해 책 구입을 막는 모든 적에게 다윗이 날리는 ‘짱돌’에 관한 책이다. “지속 가능한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독립 서점의 2년에 걸친 생존기이자, “정신을 분산시키는” 스마트폰 대신 책을 들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제시하는 독서론이다. 또 책은 나만의 것으로 만들 때 가치가 있고, 그 가치는 인생의 가치가 될 수도 있다는 책 예찬론이기도 하다.

책을 펴면 일단 짱돌을 연마한 저자의 이력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사회학자이면서 대학교수인 노명우는 ‘인생극장’ ‘세상물정의 사회학’ 등 두 자릿수의 책을 쓰고 번역한 저자다. 그에 앞서 청소년기부터 시골 서점 서가를 샅샅이 뒤지던 ‘츤도쿠(積ん讀·읽어낼 수 있는 책보다 더 많은 책을 사는 사람)’다. 책에 나온 대로 “독자이자 책을 쓰는 사람이자 책을 파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두루 갖고 있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주인이 2018년 9월 문을 연 니은 서점은 여타의 독립 서점들과 마찬가지로 큐레이션을 생존전략으로 들고 나온다. 그런데 그 큐레이션을 행할 주체의 이름이 새롭다. 저자는 어느 제자로부터 ‘바텐더’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힌트를 얻는다. ‘바(bar)’라는 단어와 ‘부드럽게 하다, 소중히 하다’라는 뜻의 ‘텐더(tender)’가 결합된 바텐더에서 책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북텐더(booktender)’를 조합한 것이다.

이는 사회학자로서 저자의 고민이 묻어나는 작명이기도 하다. 저자는 “대학과 사회를 잇는 공간”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공간” “사회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생활인이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서점을 구상했다. 이런 서점에 필요한 이는 “훈장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돕는 사람”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우선 ‘서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자신의 짱돌로 삼는다. 리뉴얼할 때 마다 책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대형 서점과 달리 커피를 팔지 않고, 참고서·학습서도 팔지 않는 인문사회과학예술분야 전문 서점을 표방한다. “돈가스와 비빔밥도 파는 식당의 냉면 맛을 우리가 믿지 않는 것처럼” 전문 상점이라면 다른 데서 파는 것을 함께 팔지 않는다는 외길을 택한 것이다. 체인·온라인 서점에 비해 공급률(정가 대비 도매가 비율)이 높아 이윤이 낮고, 그 곳들이 제공하는 “망할 그놈의 굿즈(사은품)”도 없지만 그 대신 북텐더가 정성스럽게 쓴 책 소개로 독자를 맞이한다.

‘인터넷 서핑’으로 어디로 휩쓸려 갈지 모르는 세상에서 정신줄 놓지 않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로 인도하는 ‘니은 낭독회’는 또 다른 짱돌이다. 스마트폰으로 수많은 텍스트를 접하고도 ‘읽기’보다 ‘스캔’하기 바쁜 오늘날 낭독회는 정확한 읽기의 쾌감을 제공한다. 한 문단씩 돌아가며 낭독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텍스트를 들을 수 있어 끝까지 집중할 수 있다. ‘니은 하이엔드 북토크’도 책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모공까지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작가의 육성으로 듣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의 효과는 다음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북토크가 시작될 때 작가는 그냥 작가였고, 독자도 그냥 독자이기만 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모두 일반명사를 벗어던지고 페르소나를 가진 개인과 개인의 만남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짱돌이 별무소용인 순간도 있다. 굳이 서점에 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거나 북텐더가 쓴 글을 보고 “이딴 거 쓰지 말고 책값이나 더 할인해주지”라고 말하는 이들을 마주할 때가 그렇다. 저자는 이에 대응하고자 나름의 ‘썰’도 추가로 준비한다.

다양한 썰이 있지만 여기선 하나씩만 소개한다. 저자는 책을 구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책은 누군가의 기억이 담긴 매체이고, 독서는 누군가의 기억을 해독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언급한다. 나의 책이라면 해독 과정에서 뇌가 활성화됐던 흔적을 바로 메모로 기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탄생한 책은 세상에 오직 한 권만 존재하는 “오롯이 나만의 것”이 된다. 책이 비싸다는 주장에 대해선 자신이 책에 쓴 돈과 담배 및 맥주에 쓴 돈을 비교한 조지 오웰의 아이디어를 빌려온다. 저자는 자신이 매달 10여권의 책을 구입하는 데 쓴 돈이 같은 기간 스마트폰 요금과 커피에 각각 쓴 돈과 큰 차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밖에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학 진학, 취업, 승진을 위해 책을 접하다 보니 책 읽기가 쾌감보다 인내, 절제, 끈질김, 참을성 등과 결합돼왔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는 저자가 책의 최고 쓰임새는 “특별한 목적 없이 읽는 경우”에 있다는 서술과 맞물린다. 저자는 “책과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이 책의 세계로 다시 진입하려면 지난 부정적인 경험을 대체할 완전히 새로운 독서 경험이 필요하다”고 나름의 해법도 제시한다.

책 마지막엔 지난 2년 간 니은 서점의 성적표가 부록처럼 붙어 있다. 매월 팔린 권수가 저자의 글씨로 쓰여 있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그래프는 지난 5월 정점을 찍는다. 숫자 옆에 “긴급재난지원금 만세!”라는 문구도 보인다. 하지만 그 달도 적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적자의 연속이지만 책 제목처럼 저자는 아직 굴하지 않는다. 저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절대적으로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각오했던 것보단 낫다”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정착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몰랐지만 진지하게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잠재적인 수요가 있는데, 아직 그 수요를 충족시킬 서점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hgkim@kmib.co.kr



-국민일보. 김현길 기자. 20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