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3-15 10:03
[커버스토리]코로나에도 199일 문 연 느티나무도서관…함께, 일상을 지키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13060002… [585]

(사진1) 박영숙 관장
(사진2) ‘독서’ 이상의 경험을 나누는 도서관 활동은 지속했다. 지난 1월엔 ‘팬데믹 시대, 아픔과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백영경 제주대 교수와 조한진희 작가를 초대해 포럼을 열었다. 이웃들은 미리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고(오른쪽)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참여했다. 느티나무도서관 제공
(사진3) 누구나 ‘작당모의’를 할 수 있는 공방과 부엌이 있다. 옥상 텃밭 연습장에선 함께 기르는 작물이 자란다. 도서관은 서로 어우러지는 공간이자, 스스로의 존엄을 느끼는 공간이라고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은 말한다. 들어서자마자 층고가 확 높아지는 내부는 코로나19 탓에 외출이 줄어든 시민들이 잠시 ‘숨통을 틔우고’ 가는 공간이 돼주었다. 느티나무도서관 제공


책은 쌓아두면 의미 없는 창고일 뿐
다 멈추고 봉쇄하는 게 능사는 아냐
우리 삶터에 작은 관계망을 만들고
함께 헤쳐나갈 지혜 찾는 역할 중요


경기 용인시 동천동의 느티나무도서관은 지난해 199일간 문을 열었다. 공공도서관 평균 개관일수(158일)보다 많이 연 편이다. 최근엔 “14일부터 일요일도 엽니다”라고 공지했다. 지난해 3월 “도서관 문을 닫습니다”, 4월 “반의반만 엽니다”, 5월 “반만 엽니다”, 6월 “조금 더 엽니다”를 거쳐 일요일 문을 열기까지 11개월이 걸렸다. 그사이 이 도서관을 매개로 한 코로나19 전파는 없었다.

‘반의반’일지라도 틈을 찾아 도서관 문을 연 데는 ‘도서관이 시민들의 일상을 지키는 장소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고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은 말했다. 박 관장은 2000년 사재를 털어 아파트 지하상가에 도서관을 열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문 사이로 사람이 오가고, 지식을 나누고, 어울렸다. 2007년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지어 옮겼다.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사립 공공도서관이다. 장서 규모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맺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으로, 사립 공공도서관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사립인 만큼 개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공공도서관보다 자율성이 보장됐다. 대신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을포럼과 낭독회, 메이커스페이스(창작공간) 활동 등을 지속하는 것도 과제였다. 느티나무도서관의 지난 1년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공공도서관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 20년간 도서관을 운영하며 처음 겪는 환경이었을 텐데요.

“상황이 심각할 때는 잠시 닫았지만, 방역수칙 내에서 최대한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지 조심스러웠습니다. 바이러스 공부부터 했어요. 책을 만드는 종이나 책장 목재에서의 바이러스 생존율, 공기 중 전파 여부, 소독제 유해성 등을 따져보고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거리 두기’가 익숙하지 않던 지난해 초부터 한 시간만 머물기, 색색의 층별 목걸이를 만들어 (이동) 제한 두기, 이용자 스스로 소독키트 사용하기 등 여러 방안을 선제 적용했습니다. 도서관은 공공의 공간이니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정확히 정보를 알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문을 닫는 것만큼 여는 것도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원천봉쇄가 능사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모든 일상이 차단되지 않도록, 다 멈춰버리는 게 아니라 함께 이겨낼 힘을 기르는 방법을 찾아가야죠. 이용자들과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고 서로 지켜주니까, 오히려 ‘해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하며 든든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던 시기에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더 필요할 것 같다’며 마스크를 전해주시기도 했고요. 서로 익히고 실천하는 공공성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도서관이 일제히 문을 닫고, 일제히 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각자의 자원 한도에서 시민들과 같이 어려움을 분담하는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찾았으면 어땠을까요.”


도서관은 좋은 질문을 발견하는 곳
코로나 시대 ‘시민의 실험실’이 돼야


- 많은 이들이 도서관의 역할을 고민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에겐 그간 스스로 질문하고 실마리를 찾아온 것들이 좀 더 분명해졌달까요. 도서관은 좋은 질문을 발견하는 곳입니다. 여러 자료를 볼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 속에서 다른 질문과 시선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번에 느낀 것은 도서관이 질문을 발견할 뿐 아니라, 구체적 실천을 모색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돌봄’이 화두가 됐습니다. 학교는 문을 닫고, 보육시설과 요양원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여성 퇴사자도 늘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행정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삶터에서의 작은 관계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공공도서관들의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세대 구분, 자격 요건 없이 다양한 사람이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죠.”

- ‘관계망’을 만드는 활동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저희는 ‘조용한 도서관’이 아니라 소통과 만남, 어울림이 많은 곳이거든요. 일정 수 이상 모이지 않게 모임을 아주 작게 하되, 그 작은 관계들이 이어지도록 하려 했습니다. 시간차를 두고 ‘릴레이 활동’이 이뤄진 게 기억납니다. 메이커스페이스의 ‘동네부엌’에 누군가 텃밭에서 캔 감자를 두면, 이후에 다른 사람이 그 감자로 전을 부치고, 또 사진으로 기억해 공유하는 식으로요. 서로 안부편지도 보내고요. 평소보다 사람들이 ‘연결’에 간절해지니까 이런 활동들에 큰 위안을 느꼈어요. 낭독회와 마을포럼은 온라인으로 했는데, 오프라인의 관계가 형성돼 있을 때 온·오프라인의 병행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도 새로 배웠습니다.”

- 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용자 간 상호작용을 잇는 게 중요하다고 봤나요.

“도서관은 서로 생각하고 질문하게 하면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 ‘잠재된 무언가’를 건드려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쌓아두면 창고죠. 지식은 책을 펼쳐 함께 탐색하고 공유하는 데서 만들어집니다. 저는 그걸 지식을 ‘동사화(~ing)’하는 것이라고 말해요. 일방향이 아니라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배우는 게 진짜입니다. 거창하게 ‘시민역량’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데요. 그런 힘을 기르도록 연결하고, 매개하고, 촉진하고, 북돋아주는 그런 도서관이 동네마다 자리 잡고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 코로나로 나타난 차별을 비롯해 요즘도 존재만으로 거부당하거나 차별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도서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이름표를 붙여주잖아요. 장애인, 노인, 청소년 등 그룹단위 서비스는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런 구분을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해요. 노인이라도 노인 정체성이 크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주어진 몇 개 분류를 하기보다는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한 잠재적 욕구와 인식을 발현하게 하는 도서관이 돼야 합니다. 적절한 익명성과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공공의 경험’이 여기에서 이뤄져야 해요. 도서관 낭독 모임에서 자신의 신상을 밝히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것처럼요. 이런 경험이 쌓여 공동체 내에서 ‘안전함’이라는 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도서관은 앞으로 더 중요하고 절실한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도서관을 ‘사회과학’ 같은 분류가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컬렉션’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특히 중요하다고 본 컬렉션이 환경에 대한 것입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기후 문제에 관심을 두고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이라는 컬렉션을 구성했습니다. 그 화두 아래 책과 논문, 기사, 영상뿐 아니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기후행동 모임이나 공부 모임 등도 소개합니다. 우리 동네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아야 마음이 있어도 참여할 길이 열리니까요.”

- 앞으로 도서관의 물리적 공간은 어떻게 꾸려져야 할까요.

“도서관은 본인의 ‘존엄함에 말을 거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환대받는 공간이자, 머물기만 해도 스스로가 귀해지고 존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요. 느티나무도서관은 안으로 들어오면 천장이 확 높아지는 구조인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많은 분들이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들 하시더군요. 열 평도 안 되는 다세대주택이나 원룸 거주자가 인근에 많아요. 집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견디기 힘든 상황이죠.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의 경계에 있는 듯한 도서관들이 앞으로 좀 더 녹색공간을 확보해 나가는 것도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 꿈꾸는 도서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도서관은 먹고사는 일이 다 해결된 뒤에 교양이나 여가를 위한 소극적인 역할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겪는 구체적 문제의 답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지역사회가 중요해지는 만큼, 지역 커뮤니티의 공간으로 여러 일을 도모하고 실행하는 ‘시민들의 실험실’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많은 도서관이 행정에서 제공하는 공공서비스 기관에 멈춰있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도서관 운영체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경향신문. 유정인 기자. 202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