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고(故) 엄대섭 선생은 1980년대 '대한도서관연구회'를 이끌며 본격 도서관 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최진욱 사서 제공
탄생 100주년 맞아 전국 도서관에서 기념 전시
지금은 공공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고, 무료로 대출받아 집에서 읽는 일이 자연스럽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돈(입관료)을 내야 했고, 책도 사서에게 요청해서 전달받는 식이었다. 도서관 밖으로 책을 빌리는 절차도 까다로웠다. 이런 번거로움을 없애고 도서관을 시민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운동에 앞장선 이가 있었다. 고 엄대섭(1921~2009) 선생이다.
울산 울주군에서 태어난 엄 선생은 유년시절 일본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컸다. 그러다 10대 때 헌옷을 모아 되파는 사업을 했는데, 대박이 나면서 부자가 됐다. 엄 선생이 사업에 도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덕분이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구절에 감명받아 그 당시 전무했던 사업 모델을 모색한 것. 자수성가 과정에서 책의 중요성을 느낀 엄 선생은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번 재산을 도서관 보급을 위해 썼다.
엄 선생은 우선 1950~60년대 농어촌 곳곳에 '마을문고'를 만드는 사업을 벌였다. 책장 몇 개에 불과하지만 주민이 스스로 가꾸고 책을 채워 나가는 작은도서관 형태로, 오늘날 지역 도서관의 모태다. 결과적으로 마을문고는 문맹률을 낮추고 국민의 지적 수준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공로로 1980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이후 엄 선생은 공공도서관 개선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 입관료가 폐지됐다. 이용자가 자유롭게 서가를 드나드는 '개가제'가 도입되고, 자유로운 관외대출이 보편화한 것도 엄 선생의 영향이 컸다. 2004년 정부는 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엄 선생은 오늘날 공공도서관 운영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지만 일반인은 물론, 도서관 종사자나 문헌정보학 전공자에게조차 생소한 편이다. 지난 5월 그의 업적을 소개하는 책('공공도서관 엄대섭이 꿈꾼 지식나눔터')을 펴낸 울산 매곡도서관 소속 최진욱(53) 사서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오랜 시간 학계에서는 작은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등한시한 측면이 있었고, 젊은 사서들은 최신 정보기술을 다루는 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선배들의 활동이 잊혀 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 선생의 노력이 없었다면 도서관은 정보자료를 얻는 곳이 아닌, 학생들의 공부방으로만 머물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엄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도서관사연구회는 전국 대학과 도서관에서 기념 전시를 열고 있다. 30일까지 서울 중랑구립정보도서관에서 열린 뒤 연말까지 서울 구립응암정보도서관, 도봉구립도서관, 성북구립도서관 등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10월 전북 군산에서 열리는 전국도서관대회에도 엄 선생의 업적을 조명하는 세미나가 예정돼 있다.
- 한국일보 2021.07.28 장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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