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4-01 11:35
헌책 12만권이 한자리에… “보물 창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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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27일 서울 송파구 잠실나루역 근처에 개관한 전국 최초의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를 찾은 시민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뉴스1
(사진2) ‘서울책보고’는 27일 개관 기념 특별전 ‘그 때, 그 책보고’를 마련해 초판본부터 옛날 잡지, 1950년대 교과서 등을 전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첫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
송파구 잠실나루역 인근 문 열어
공씨책방ㆍ동신서림 등 25곳 참여


“많은 사람들이 헌 책이 주었던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길 바라며 다시금 관심을 갖고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동신서림)

“어디에서 어떤 책을 찾게 될지 모르는 보물찾기 하는 느낌을 갖고 오신 모든 손님들을 환영합니다.”(서적백화점)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50년 넘게 지켜온 동신서림 등 25개 헌책방이 한데 모인 ‘헌책 보물창고’가 27일 열렸다. 서울시가 송파구 잠실나루역 인근 신천유수지 내 비어있던 대형창고(1,465㎡)를 개조해 만든 전국 최초의 공공 헌책방 ‘서울책보고(寶庫)’다.

내부는 ‘책벌레’를 형상화한 아치형의 철제 서가 32개가 마치 ‘책 동굴’처럼 늘어서 길을 내고 있다. 주제별로 책이 분류된 일반 서점과 달리 12만권이 넘는 헌 책이 헌책방별로 나눠진 서가에 꽂혀있다. 서울책보고를 운영하는 서울도서관이 책방으로부터 위탁 받아 판매하는 방식이다. 시중 대형 중고서점보다 낮은 10%대 위탁 수수료만 떼 헌책방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 이곳에 서가를 마련한 헌책방 1세대 ‘공씨책방’의 장화민 대표는 “예전에는 지방에서도 책을 구하러 큰 배낭을 메고 올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는데 이젠 많이 줄었다”며 “이렇게 넓은 공간에 책방이 다 함께 모여있으니 손님이 많이 늘 것 같다”고 기대했다. 헌책 판매처를 넘어 설 곳을 잃어가는 영세 헌책방과 독자를 잇는 게 서울책보고의 또 다른 역할이다.

헌책방인 만큼 희귀도서를 찾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절판되어 구할 수 없던 책이나 초판 인쇄본, 옛날 잡지, 1950년대 교과서까지 없는 게 없다. 대한민국 잡지의 역사를 다시 쓴 ‘뿌리깊은 나무’와 폐간된 영화 잡지 ‘키노’, 화가 김환기의 절판된 산문집 초판 등이 대표적이다. 이정수 서울도서관장은 “기존 기업형 중고서점은 신간에 가까운 책을 헌책이라고 팔지만 여기에는 활판인쇄를 한 아주 오래된 책도 있고,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고, 도서관에서조차 보기 힘든 책이 많다”며 “서울도서관에서도 구입해 소장해야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책보고의 또 다른 볼거리는 한쪽 벽면에 꾸며진 ‘독립출판물 도서관’이다. 개인ㆍ소규모 출판사가 기획ㆍ판매하는 독립출판물 2,130여권을 볼 수 있다. 이날 개관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에 거점 도서관을 5개 만들 생각인데 그 중 하나는 독립출판물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심영희 한양대 석좌교수 부부가 기증한 1만600권도 ‘명사 기증도서’ 서가에 놓여있다. 밑줄 긋고 메모하며 읽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여성학ㆍ사회학 등 전문서적을 통해 두 학자의 지식편력을 엿볼 수 있다.

서울책보고는 북콘서트나 공연 등이 열리는 아카데미 공간과 북카페도 마련해 책을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진다. 성동구에서 일하는 손우람(34)씨는 “회사에 두고 읽을 책을 사러 점심시간에 일부러 짬을 내 왔다”며 “책 종류가 다양해서 앞으로 자주 올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권영은 기자. 2019.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