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술정보와 공동 작업 김한영 참빛아카이브 대표
조선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한제국기 발간 `몽학필독` 등
세월의 흔적 그대로 살려내
"북한·재일동포 교과서 복간해
민족동질성 회복 돕는게 목표"
"이번에 복간한 한국의 대표 고전들과 옛 교과서들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된 책들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이 고전을 접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펴냈습니다."
9일 만난 김한영 참빛아카이브 대표(57)가 참빛복간총서 `우리의 고전과 옛 교과서 629책`을 펴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김 대표가 설립한 참빛아카이브는 한국학술정보와 공동으로 학술적·역사적·문화적으로 되새기고 기억할 만한 가치를 지닌 우리의 고전과 옛 교과서 629책을 영인(影印·인쇄물 원본을 사진으로 복사해 인쇄하는 것) 방식으로 최근 복간했다.
복간본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참빛아카이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446년 집현전에서 펴낸 `훈민정음`부터 1969년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발행한 `국어 1-1`까지 629책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감내해야 했던 역사적 격변과 공동체의 질곡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죠. 1969년은 현시점에서 약 두 세대 전이라 이를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문제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 발전사를 담은 이런 소중한 자료들이 점점 유실돼간다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자료들을 발굴·복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없다면 저라도 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이 일에 뛰어들었죠."
전남 완도 출신인 김 대표는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했다. 김 대표는 미학을 전공했지만 책을 대상으로 조사·분석·연구해 기술하는 학문인 `서지학(書誌學)`에 관심이 많았다. 김 대표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서가를 뒤져 도록 등을 접하며 서지 세계에 발을 들였다"며 "비록 전문 연구자는 아니었지만 외국 서적만 들여다보는 것은 한계가 있겠다 싶어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등 우리 옛 서적들을 탐독하게 됐다"고 말했다. 알면 보인다는 말처럼 다양한 옛 서적을 접하면서 자료 속에 숨은 뜻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처음 옛 교과서에 관심을 가졌을 때만 해도 사회적인 분위기는 우리 고전 연구를 하찮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습니다. 고서적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몇 있었지만 이들은 고전이 가진 의미는 모르지만 일단 수집해서 박물관을 건립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저 전시만 하는 자료는 `죽은` 자료입니다. 저는 가급적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여 년 동안 김 대표가 홀로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는 3만여 점에 달한다. 이 중 629책을 복간하는 데 5년5개월이 걸렸다. 대부분의 작업은 홀로 진행했다. 복간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비용`이었다. 김 대표는 "복간을 할 원본 구입과 복간 작업에 많은 비용이 들었다"며 "다행히도 주변 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복간 작업에서 애착이 가는 책으로 훈민정음과 대한제국기에 발간된 교과서인 몽학필독(蒙學必讀)을 꼽았다.
"훈민정음은 원문이 전부 한문으로 된 해례본과 우리가 잘 아는 `나랏말싸미`가 담긴 예의본 두 가지를 복간했습니다. 한글의 창제 이유 등을 담은 우리 고전 중 고전이죠. 원본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 열람이 어렵다보니 조선어학회에서 펴낸 복간본을 기준으로 다시 영인본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복간한 책인 몽학필독입니다. 1970년대 말 영인본이 한 차례 나왔지만 파본으로 복간한 거라 부족한 부분이 있었죠. 찾아보니 이 책의 온전한 원본이 딱 한 권 카자흐스탄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이 책을 가지고 간도·연해주로 넘어간 우리 조상들이 이오시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중앙아시아에 정착하면서 이 책이 현지 도서관에까지 흘러간 것이죠. 우리 민족의 기구한 역사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몇 달 동안 도서관과 이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스캔본을 받아 복간에 성공했죠."
참빛아카이브에서 복간한 629책은 1차분이다. 김 대표는 복간한 책을 전자책으로 출간하고 어려운 한문 자료의 해제집을 발간해 누구나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
또한 김 대표는 향후 남북한의 문화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복간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1945~1969년 사이에 발간된 북한 교과서와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의 교과서, 재일동포가 사용한 교과서까지 복간하는 게 목표입니다. 고전을 복간하면서 민족 문화를 복원해보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생겼어요. 우리 고전들은 한민족 공동체의 문화적 자산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북한사회과학원 등에 이 총서를 기증할 용의도 있어요. 복간 작업은 제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수익을 올리지 못하더라도 가급적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접하는 것이 제 목표거든요."
-매일경제. 이영욱 기자. 201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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