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4-17 13:12
[동네책방 나들이 시즌 2] <6> 목포 ‘고호의 책방’ 시간이 멈춘 듯 원도심 속 ‘지적 독서로의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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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미술 중심 서점인 ‘고호의 책방’은 목포 원도심에 자리하고 있다. 고흐의 자화상이 눈에 띄는 서점 내부 공간은 아늑하다.)

목포 매력에 빠져 50년만에 탈서울
서양미술사 관심에 미술 중심 서점 열어
코롬방 제과점 옆…손님 90%가 여행자
‘지적 사고 확장되는 쾌감’ 선물하고 싶어
누구나 와서 글쓰고 그림 그리기 가능
목포 청년 제작 엽서 등 굿즈 판매도

서점 앞 간판을 보자마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양손에 책과 빵을 들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모습이라니. ‘고호의 책빵’이라는 글귀와 함께 적힌 ‘빵은 옆집에서 팝니다’를 보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점 바로 곁에 1949년 문을 연 터줏대감 코롬방 제과가 자리잡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나혼자 산다’에 소개되며 유명해진 씨엘비베이커리도 지척이니, 말 그대로 빵집에 둘러싸인 책방이다.

목포역 인근 원도심에 자리한 ‘고호의 책방’.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드는 공간이다. ‘사진은 자유롭게 찍으세요. 조금 떠들어도 좋습니다. 궁금한 건 주저말고 물어보세요.’ 책방에 붙어 있는 안내글이 편안함을 전해준다.
책방지기 백선제씨는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2020년 책방 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줄곧 생활했던 그는 탈서울을 꿈꿨다.

“서울에서 50년 넘게 사니 답답하더라고요. 서울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TV에서 귀촌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며 꿈을 꾸곤 했죠. 은퇴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귀촌을 준비했습니다.”

목포는 그와 아무 인연도 없는 곳이다. 신안군청으로부터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아 6개월간 머물렀던 그는 지명 정도만 알았던 목포를 처음 찾았고,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원도심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낡은 간판과 나즈막한 집 등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 모습 그대로였다. 골목을 둘러보고, 역사를 공부하며 목포가 점점 더 좋아졌다. 강진, 보성 등 이름만 들었던 고장이 가까이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고호의 책방은 ‘미술 중심 책방’을 지향한다. 왜 고흐가 아닌, 고호일까.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바하라는 이름 대신 바흐가 됐다. 그는 “사투리”라며 웃었다.

목포에 살기로 결심하며 책방을 열기로 했다. 책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큰데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장사를 해야하는데 그럼 책이다 싶었다. 상권 분석을 열심히 하고,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의 서점을 돌아다니며 벤치마킹을 했다. 사실, 요즘의 동네책방들은 비슷비슷한 책을 구비해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고호의 책방의 큐레이션은 단연 눈에 띈다.

“미술 중심 책방을 열자 싶었어요. 디자인 일을 하기는 했지만 미술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서양미술사 등을 공부하고 싶었죠. 대신 아주 어렵거나 너무 전문적인 서적보다는 미술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책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더불어 평상시에 제가 읽고 싶었던 책, 권하고 싶었던 책도 구비해 두고요. 북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표지가 예쁜 책들도 가져다 놓았습니다.”

원도심은 목포를 방문하는 이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서점을 찾는 이들의 90%가 여행객이고, 그 중 30%가 광주에서 온다. 요즘 책방투어가 유행이기도 하지만, 평범한 관광객들도 서점을 많이 찾는다. 그는 공간을 꾸미는 데 공을 들였다. 직접 색을 고르고 가구를 선택한 그는 오랫동안 인테리어를 고민했다. 인터넷에서 영국과 이탈리아 책방의 분위기를 찾아보고, 말끔한 느낌보다는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책장을 골랐다. 커다란 고흐의 자화상, 독특한 느낌의 푸른색 벽은 서점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서점이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정하고 서점 투어를 다니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 도시에 들렀다 우연히 책방을 방문하는 이들도 많아요. 서점에 들어오면 눈정화라도 하고, 무언가 새로운 느낌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책을 구매하는 것은 입장료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많은 분들이 한번쯤 들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책’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있다. 책을 편식했던 그는 40대까지 감성을 자극하는 시집과 소설을 주로 읽었다. 그러다 접한 책이 송은영의 ‘블랙홀 랑데부(아인슈타인과 호킹의)’였다. 서점에서 한번도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천체물리학 책을 집어든 이 날을 그는 ‘지적 폭풍이 몰아친 날’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 서서 책을 다 읽어버렸고 책을 구입해 집에서 몇차례 다시 읽었다. 당시 책을 접했던 중 1 둘째 아이는 지금 천문대에서 별을 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적 사고가 확장되는 쾌감을 느낀 그는 점차 물리학, 철학, 역사 등으로 책읽기를 넓혀갔고 “그 이전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음”을 알게됐다.

“책을 읽으며 너무 놀랐죠. 저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살고 있는 사람이 많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더 빨리 알았더라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많은 생각도 했고요. 지금 서점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가져다 놓습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관련 서적도 가져다 두었어요. 인간들이 사는 지구에는 늘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고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도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다른 책방처럼 책 소개 글을 붙여놓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 다른 책들이 “왜 나는 안 써줘?”라고 말하는 것 같고,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안내를 하기보다는 혼란을 주고, 때론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다.

“책을 골라 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게 참 어렵죠. 취향도, 지금까지의 독서 내력도 다 다르니까요. 새로운 세계로 빠져들고 싶은 사람, 쾌락 독서와 함께 지적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을 안내하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된다고 정해진 게 인생이 아니듯, 무슨 책을 읽어야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살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슬쩍 조금만 등을 밀어드리는 정도로 마음을 쓰려합니다.”

이외수, 양귀자의 소설을 좋아했던 그는 백수린, 최진영 등 요즘 젊은 여성 작가들이 “눈물날 정도로 고맙다”고 했다.

그가 직접 디자인한 4종의 엽서는 인기가 높다. 책방 간판으로도 사용하는 ‘고호의 책빵’ 엽서는 위트가 넘친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고, 영혼의 빵이지 않겠냐며 그가 웃었다. 실제로 빵집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제가 상업디자인과 브랜딩 작업을 했던 사람이예요. 우리 서점에서는 무엇을 팔 것인가를 고민했죠. 물론 직접적으로는 책을 팔지만, 그분들이 책만 사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여행의 코스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저도 어떤 책방에 가 보면 문 열고 들어가기가 힘들기도 해요. 쭈볏쭈볏한 마음이 드는 거죠. 묵직하고 도서관 같은 느낌 보다는 ‘시끄러운 책방’을 표방합니다.”

큰 탁자가 놓인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초기에는 미술 지도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누구든지 와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간다. 케이블카, 목포근대문학관 등 인상적인 목포의 장소를 그림으로 남기고, 책방지기를 그려주고 가기도 한다. 예약을 하면 무료로 공간도 사용할 수도 있다.

책방에서는 목포 청년 작가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그린 그림으로 제작한 엽서, 마그네틱, 열쇠고리 등 굿즈도 만날 수 있으며 목포 관련 서적 코너도 따로 마련해뒀다.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헤르만 헤세의 ‘밤의 사색’, 박보나의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등이며 시집도 잘 팔린다. 서점을 하면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책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손님들이 물어보는 책은 100% 없을 때가 많아요.(웃음) 그런데 또 제가 가져다 놓기는 했어도 이런 책을 누가 읽을까 싶은 책도 있는데 그 책을 사가는 사람이 분명 있어요. 책은 만남이고, 모든 책에는 임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목포를 방문한 사람들은 세 개의 봉투를 들고 다닌다고 했다. 코롬방 제과나 씨엘비 베이커리의 빵 봉투, 유제석의 ‘놀면 뭔하니’에 등장해 화제가 된 목포 쫀드기 봉투, 그리고 고호의 책방의 책봉투. 나도 그 중 두 개의 봉투를 들고 취재 후 목포 구경에 나섰다.

- 광주일보 2024.4.9 김미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