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2-26 14:16
‘안녕, 다시 만나’…문 닫는 만화책 마니아 메카 ‘북새통문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84499.html [599]

(사진)25일 오후 폐업을 사흘 앞둔 서울 마포구 북새통문고에서 시민들이 만화책을 고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페이스북트위터공유스크랩프린트크게 작게
국내 최대 규모 만화책 서점 이달 말 영업 종료
저마다 추억 안고 “문 닫기 전 한번만 가보자” 발길

“고등학생 때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았던 곳이에요. 근처 미술학원에 다녔는데, 마치면 바로 여기로 달려오곤 했죠.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면서 웹툰작가의 꿈을 키워온 공간이었는데…”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북새통문고에서 만난 웹툰작가 김윤희(33)씨가 영업 종료 안내문 앞에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씨는 북새통문고가 문을 연 2004년부터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북새통문고는 10만권의 도서를 보유한 170평(약 562㎡)규모의 국내 최대 만화책 전문서점이다. 절판된 책을 출판사와 협의해 특별판으로 다시 펴내는 등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책도 있어 국내 만화책 애호가들의 ‘메카’로 꼽혔다.
그렇게 17년간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 자리를 지켜온 북새통문고는 이달 28일 문을 닫는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오프라인 서점의 경쟁력이 줄었고, 온라인 웹툰 플랫폼이 활성화됐던 2017년 말부터 영업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종이책이 주는 ‘손맛’과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이 잔뜩 쌓여있는 ‘질감’ 등 아날로그 감성을 잊지 못해 계속 찾는 손님들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앞에선 마니아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코로나19 유행 탓에 매장을 찾는 손님 자체가 줄다 보니,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70% 줄었어요. 도저히 매장을 유지할 수 없어 영업 종료를 결정했어요. 오랜 단골들이 편지와 선물을 들고 찾아와 ‘계속 영업해주시면 안 되냐’고 하는데 마음이 아팠죠.” 2007년부터 이곳에서 일한 직원 박회순(47)씨가 말했다.

<한겨레>가 북새통문고를 찾은 이날 저녁 영업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추억을 곱씹으려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직장인 탁명아(31)씨는 “학창시절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만화책 전집을 사서 밤새 읽던 추억이 서린 공간인데 이번 달까지만 영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선원 김일한(33)씨는 “일을 마치고 6~7달 만에 한국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북새통에 와 만화책을 수십권씩 사곤 했는데 소중한 취미 공간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회탁(64) 북새통문고 대표는 “이곳에서 참 많이 행복했어요. 세뱃돈을 모아 샀다며 만화책을 안고 좋아하던 학생들 모습이 가장 많이 떠올라요. 순수하게 만화를 좋아하는 열정이 제게도 느껴졌죠. 그랬던 꼬마들이 번듯한 직장인이 돼서 아이 손을 잡고 다시 오는 걸 보면 뿌듯했습니다.”

폐업 소식을 전해들은 중견기업 등이 투자를 제안하고 있어 향후 다시 북새통문고를 만나보게 될 수도 있지만 재개장 하더라도 위치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대로 북새통이 사라지지 않고,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 대표는 지난 17년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 한겨레 2021.02.26, 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