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 종로도서관의 이범승 흉상. 이 흉상을 철거하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현존 한국 최고의 근대식 공공도서관인 종로도서관(전신 경성도서관)과 설립자 윤익선(1871~1946)의 삶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의 도서관은 1920년 11월 개관했지만 운영난 때문에 이듬해 탑골공원 인근에 개관한 같은 이름의 도서관과 통합돼 분관 형태로 운영되다가 1924년 폐쇄됐다. 1921년 설립된 '경성도서관' 설립자는 충남 연기군 만석가의 외동아들로 교토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이범승(1887~1976.9.3)이다.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독일어, 라틴어에도 능통했다는 그는 장학생으로 대학을 마친 뒤 약 2년간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사, 도서관 설립을 추진했다. 그에게 도서관은 국민 계몽의 거점이었다. 학교는 턱없이 부족했고, 입학 기회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는 1919년 4월부터 일본인이 운영하던 매일신보사에 도서관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러 편의 글을 게재했다.
"스스로 깨닫는 길은 지식에서 얻게 되고 지식은 책, 학교, 신문 등에서 얻게 되는 것인데 우리 조선의 사정은 아주 적은 학교교육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개설하여 신교육을 받지 못한 자는 물론 신교육을 받은 자에게도 더욱 활발히 신지식을 매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도서관이 없습니다. 경성을 위시하여 각 도는 물론 각 군에 순회문고라도 두어 일반적 지식을 보급하게 하여 눈을 뜨게 해야 하겠습니다."
총독부는 탑골공원 부지 531평과 조선 양악대 숙소 건물을 무상으로 제공했고, 그는 열람실과 서고, 신문 잡지실, 휴게실, 아동열람실 등을 갖춘 도서관을 개관했다. 빈민 아동을 위한 교실과 여성 강좌를 따로 마련했고, 소파 방정환 등을 초청해 동화 구연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의 도서관 역시 재정난으로 1926년 경성부로 넘어가 경성부립도서관이 됐다. 도서관 파산 이후 그는 총독부 산하 여러 도청 관료를 지냈고, 해방 후 초대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립도서관 설치 조례를 제정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그의 이름을 친일인명사전(관료)에 수록했다.
- 한국일보 2021.09.03 최윤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