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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1911년 이해조가 지은 신소설 ‘쌍옥적’. 표제에 ‘정탐소설’이라는 명칭이 부기돼있다. 동학혁명 직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당대의 인심과 세간의 풍속도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3) 살인 사건과 탐정에 의한 본격적 추적을 처음 보여주는 ‘혈가사’ 최초 수록본. 인천문화재단 제공
(사진4) 한국의 명탐정 유불란 캐릭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탐정소설가의 살인’ 일본어 원본. 인천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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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탐정들’ 특별전 국내 첫 개최
소설 속 우리나라 탐정 역사 한눈에
첫 정탐소설 ‘쌍옥적’서 ‘마인’까지
20세기 초중반 추리소설 발전사 조명
최초 수록본·일어 원본 등 희귀자료 소개
‘경성탐정 유불란’ 활약 담은 전시물
‘사선을 넘어서’ 첫 공개 등 섹션 다채
근대문학관, 2022년 상반기까지 무료 전시
뛰어난 관찰력으로 사건 현장을 파악하고, 숨겨진 트릭을 발견해 범죄를 해결하는 탐정은 소설, 영화, 만화, TV 시리즈 등으로 인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직업이다. 추리물은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해 마니아층도 두껍다. 우리나라에도 추리물 마니아는 흔히 보이지만, 누구나 알 만한 국내 탐정 캐릭터를 꼽아 보자고 하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에게 탐정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을까.
소설을 통해 우리나라 탐정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열린다. 지난 5일부터 인천시 한국근대문학관에서 국내 최초로 열리는 ‘한국의 탐정들: 한국 근대추리소설 특별전’이다. 한 세기 전 등장한 ‘정탐소설’부터 1950년대 이르기까지 추리소설의 발전사를 조망할 수 있어 추리물 마니아들의 관심이 쏠린다. 이번 전시는 무료로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한국의 탐정들: 한국 근대추리소설 특별전’에서는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 ‘쌍옥적’, 살인 사건과 탐정에 의한 본격적 추적을 처음 보여주는 ‘혈가사’의 최초 수록본(취산보림, 1920), 한국의 명탐정 유불란 캐릭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탐정소설가의 살인’의 일본어 원본, ‘마인’의 조선일보 연재본(1939) 등 한국 근대 추리소설 관련 희귀자료가 대거 공개될 예정이다. 또 방인근이 창조한 명탐정 장비호가 활약하는 ‘나체미인’, ‘국보와 괴적’ 등의 원본도 처음 공개된다.
이해조가 지은 신소설인 ‘쌍옥적’은 1911년 보급서관(普及書館)에서 간행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표제에 ‘정탐소설’이라는 명칭이 부기될 정도로 그 창작의 의도와 갈래적 성격이 뚜렷한 작품이다.
동학혁명 직후의 한말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경인선 열차 안에서 돈 가방을 잃어버린 김 주사가 이를 찾기 위하여 정 순검을 찾는데, 사건을 맡은 정 순검은 민완한 사복형사로 등장한다. 가방을 훔친 범인은 피리를 잘 부는 손가 형제로서, 그 도둑질 솜씨가 뛰어나고 범행 은폐를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쌍옥적’이라는 이 작품의 제목은 살인강도 형제의 신출귀몰한 피리 솜씨를 상징한 것이며, 이 피리 소리를 근거로 정 순검은 범인 추적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전시의 한 섹션을 할애한 ‘한국을 대표하는 명탐정-유불란’에서는 본격적으로 등장한 한국형 명탐정 유불란의 활약을 감상할 수 있다. 김내성이 1935년 일본에서 발표한 ‘탐정소설가의 살인’을 통해 처음 등장한 유불란과 그의 명성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아동탐정소설 ‘백가면’(1937), 한국 근대 추리소설의 최고 걸작 ‘마인’을 자료와 다양한 콘텐츠로 전시했다. 1939년 2월14일부터 10월11일까지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마인’은 이후 1948년 해왕사(海王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그동안 연구자들에게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문세영의 ‘사선을 넘어서’도 최초 공개된다. 1944년 집필된 이 작품은 일본과 중국을 무대로 일제의 침략논리인 ‘대동아공영권’ 완수를 위해 스파이들이 각축을 벌이는 내용이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처음으로 보트 추격전과 전투기의 공중전이 나타나는 친일 탐정소설로서, 이번 발굴을 통해 추리소설 분야는 물론 친일문학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이번 전시는 근대 추리소설의 역사적 흐름과 한국 근대 추리문학 작품 속 탐정들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도록 7개 섹션으로 나뉘어 있으며 다양한 체험 장치를 통해 관람객의 흥미를 끈다. 탐정과 범인들이 사용한 총기 모형과 피가 묻은 범죄의 증거품, 등장인물들이 주고받은 편지 등 소설 속 내용을 다양하게 시각화하여 재현한 자료들이 준비됐다. 한국근대문학관 관계자는 “우리 근대 추리소설의 역사적 흐름과 잊혀진 한국의 명탐정들을 알리기 위해 매우 공들여 준비한 전시이다”라면서 “모험과 스릴이 넘치는 추리문학을 실감 나게 체험하시기 바란다”고 설명했다.
josungmin@segye.com
-세계일보. 조성민 기자.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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