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스마트 미디어의 기세가 거세다. 일상의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과 영상 매체가 차지하고 있다. 급격한 매체 환경의 변화로 신문, 잡지, 책 등 전통적인 활자 매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활자 콘텐츠도 디지털과 모바일 방식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매체 형태의 변화만으로는 활자 이탈 현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국민의 종이책 독서율은 20%나 감소했다. 그렇다고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등 새로운 독서 매체가 그 감소 폭을 메꿔준 것도 아니다. 초등학생 때 가장 많은 책을 읽고 나이 들수록 독서량이 줄어드는 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생애 독서 그래프다. 청소년기에는 대학 입시의 관문, 대학생 때는 좁디좁은 취업 준비, 다음에는 사회생활의 팍팍함이 손에 책을 들 최소한의 여유조차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구입하지도 읽지도 않는다.
책 읽기가 우리처럼 추락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영국처럼 나이가 들수록 책을 더 많이 읽는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읽기’는 곧 ‘생각하기’와 동의어다. 그래서 읽기는 사람살이의 기본이다. 읽지 않는 사회를 방치하는 것은 개인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도자들의 직무 유기에 가깝다. 프랑스 역대 대통령들은 책이 프랑스 문화의 기본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왜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보기 어려운가.
새로운 출판진흥 5개년 계획, 즉 출판문화산업진흥 기본계획(2022~2026년) 수립 준비가 한창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수행 중인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차기 계획을 머지않아 발표할 예정이다. 당장 다음 주에 연구 내용 관련 공청회가 열린다. 나아가 내년 3월9일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차기 정부 임기와 출판진흥 5개년 계획의 시행 기간이 마침 일치한다. 차기 정부의 국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후보자들도 책과 독서, 출판 생태계 육성 계획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난 9월 발표된 ‘코로나19와 읽기 생활 변화 조사’(책과사회연구소)에서 ‘누가 나에게 책을 권할 때 읽을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 3천 명의 응답자들은 친구, 가족, 권하는 책과 관련된 전문가 등을 독서 권장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꼽았다. 공교롭게도 정치인의 비중은 스포츠 스타와 더불어 가장 낮았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라면 보통의 정치인들과는 기대치가 다르다. 얼마든지 좋은 독서 환경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그가 감명 깊게 읽었다고 소개하는 책 한 권이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책 읽는 나라를 만들 것인지, 대통령 후보자들의 비전을 듣고 싶다.
현대 사회에서 독서는 더 이상 개인의 기호나 취미의 영역이 아니다. 읽지 않으면 보다 인간다운 삶에 이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급속한 세상의 변화에도 적응하기 어렵다. 상상력을 발휘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 책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 그래서 차기 정부에서는 누구나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마음만 먹으면 독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독서복지국가’의 초석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출판 진흥책이자 최상의 문화정책이다.
- 한겨레신문 2021.11.27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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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20888.html#csidxb05f2649222e4c0a5180f17e6f23e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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