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기태 세명대 교수가 지난 15일 충북 제천시 처음책방에서 초판본, 창간호를 들고 웃고 있다. ‘월간 조선’·‘가정 조선’·만화 잡지 ‘보물섬’의 창간호, 소설 ‘광장‘ ’영웅시대’ 초판본, ‘현대문학’ 창간호. /김영준 기자
“오류 있어도 열정 가득한 초판본의 매력에 빠졌죠”
최인훈의 ‘광장’(1961),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1946), 만화 잡지 ‘보물섬’(1982)….
충북 제천 의림지 인근 ‘처음 책방’에서는 최신 베스트셀러 같은 요즘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은 책이나 간행물의 초판본·창간호를 전문으로 다루는 서점이다. 서점에 있는 책들은 모두 김기태(58)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가 30년 넘는 세월 직접 수집했다. 지난 15일 만난 김 교수는 “수집한 책이 몇 권인지 나도 정확히 모른다”며 “세어본 것만 6만5000권이 넘는다”고 했다.
김 교수가 모은 초판은 장르와 종류가 다양하다. 문학 작품의 초판본뿐만 아니라, 만화 잡지 초판, 각종 월간지·주간지 등 정기 간행물의 창간호도 모았다. 지역 신문, 성인 잡지 창간호, 사전과 각종 참고서의 초판본도 있다. 가장 오래된 책은 1934년 출판된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개교 25주년 기념 논문집. 여기엔 ‘동양의 파브르’라 불리는 우리나라 나비학자 석주명(1908~1950) 선생의 논문 2편이 실려 있다.
김 교수는 1980년대 후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초판본·창간호 수집을 시작했다. 그가 담당한 첫 책이 나오고 들른 서울 청계천 헌책방에서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호를 발견했다. 그는 “첫 책을 내놓기 위해 노력했을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에 공감이 됐다”며 “그런 열정들이 담겨 있는 초판본과 창간호에 애정이 갔다”고 했다.
김 교수는 대학교 시간 강사로 전국을 다니던 1990년대 중반부터 보물찾기 하듯 헌책방을 다니며 책을 모았다. 그는 “수업 사이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배낭을 둘러메고 헌책방을 다녔다”며 “책방이 있는 곳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3년 전쯤엔 아들과 부산 여행을 하다 헌책방에서 박완서 소설 ‘나목’(1970) 초판본을 발견했어요. 구하기 어려운 책인데 우연히 그 책을 발견해서 정말 기뻤어요.”
김 교수는 “초판본과 창간호는 각종 오류가 있다는 게 매력”이라며 “그 오류도 ‘하나의 역사이자 추억’”이라고 했다. “소설가 최인훈은 ‘광장’ 속 역사적 오류 등을 고치려 열 번 넘게 작품을 개정했어요.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고 그 시작은 초판이죠. 초판본에 담겨 있는 오탈자 같은 오류를 보면서 ‘저 편집자 식은땀 좀 흘렸겠네’라고 생각하는 재미도 있지요.”
김 교수는 오는 3월 중 정식 개점을 목표로 책 정리에 한창이다. 초판본을 전문으로 한다는 의미를 담아 서점 이름도 ‘처음 책방’이라고 지었다. 원하는 사람에게 책을 팔기도 하고, 책을 사지 않아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그가 수집한 책들이 훗날 연구자들에게 사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책의 표지와 판권지 등을 스캔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제가 모은 책들이 구경거리로만 그치지 않고 이곳에 오는 분들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요즘은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 조선일보 2022.02.19 김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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