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버스 끊기는 숲속 도서관 "책은 창문… 바람과 빛 가져다줘요"
일본 나라현 히가시요시노무라의 70년된 고택을 개조해 만든 숲속 도서관 ‘루차 리브로’. /어크로스
일본 나라현 인구 1700명의 작은 산촌 히가시요시노무라엔 70년 된 고택을 개조한 사설 도서관 ‘루차 리브로’가 있다. 2016년 개관한 이 숲속 도서관은 주말이면 버스가 끊겨 한 달에 10일 남짓만 문을 열지만, 일본에서 9년째 ‘치유와 회복의 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가 조명하고 일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가 ‘인문 지식의 거점’으로 꼽은 곳이다.
이 도서관 사서 아오키 미아코(40)를 서면으로 만났다. 도서관의 이야기는 지난 3월 국내에서도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어크로스)란 제목으로 출간돼 ‘무해한(착한) 콘텐츠’ 열풍 속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도서관장은 그와 지중해 연구자인 남편 아오키 신페이가 키우는 고양이 ‘가보스’, 주임은 개 ‘오크라’다.
루차 리브로 사서 아오키 미아코. /어크로스
루차 리브로 사서 아오키 미아코. /어크로스
아오키는 자신을 “불완전한 사서”라고 고백한다. 대학 졸업 후 6년여간 고베 등에서 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업무와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 등으로 몸과 마음이 일시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자살 시도로 3개월간 입원해야 할 만큼 다치게 된 순간 떠올린 것이 ‘나만의 도서관’이다.
“스스로 불완전함과 무력함을 절실히 깨달았을 때, ‘손에 잡히지 않는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누군가와 함께 고민해보고자 했다. 오히려 그렇게까지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도서관을 열지 않았을 것 같다.”
삼나무 숲으로 둘러 쌓인 루차 리브로. 이 곳에선 늘 삼나무 향이 난다./어크로스
삼나무 숲으로 둘러 쌓인 루차 리브로. 이 곳에선 늘 삼나무 향이 난다./어크로스
실제 삼나무 숲에 둘러싸인 도서관엔 학교에 부적응하거나, 취업에 실패한 젊은이 등 ‘현실에 숨 막힌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안고 찾아왔다가, 함께 책 읽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떠난다.
“도시에서 우리는 늘 ‘할 수 있다’고만 이야기해 왔다. 루차 리브로의 서재엔 ‘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끔 도와주는 책이 많이 꽂혀 있다. 그런 책장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또 자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단 점도 사람을 치유하는 요소가 아닐까 한다.”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을 도서관으로 개방하고 개인 장서를 공유하면서, 돌봄과 회복을 가장 강하게 경험한 건 아오키 자신이기도 하다.
“요즘은 조금씩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게 돼, 할머니가 되어서도 루차 리브로를 열어두고 싶단 생각을 한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여전히 상처받는 사회의 모습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지만, 우리가 어려움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즐겁게 살고 있단 것 자체가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되면 좋겠다.”
루차 리브로의 장서들. /어크로스
루차 리브로의 장서들. /어크로스
그는 당장 ‘루차 리브로’를 방문하기 어려운 한국 독자에겐 “‘책’이라는 ‘창문’을 통해 만나면 좋겠다”고 했다.
“‘문’이 지금 있는 방에서 곧바로 바깥세상으로 데려다 주는 장치라면, 창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창이 있는 것과 없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창이 있단 건 ‘우리가 지금 있는 방과 다른 세계가 확실히 존재하며, 언젠가 그 풍경 속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일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도서관은 ‘근사한 창문을 잔뜩 낸 벽’이다.
책 ‘나는 숲속 도서관…’ 말미엔 아오키가 소개하는 ‘창’들이 많이 있다.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돌베개), ‘몽십야’(현인), ‘고야산 스님·초롱불 노래’(문학동네) 등이다.
“이 목록을 들고 근처 서점이나 도서관에 꼭 가보길 바란다. 멋진 창문이 지금 당신의 방으로 바람과 빛을 가져다줄 것이다. 물론 언젠가 우리 도서관을 직접 방문해 준다면 그 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지만!”
- 남정미 기자 조선일보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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