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7-15 15:26
일본 ‘전자책 시장’의 明暗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71501033030025004 [607]
잘 아는 일본인 학자는 책을 구입하면 이를 전부 뜯어낸다. 스캔해 전자책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스캔한 뒤 책은 버린다. 비싸게 구입한 책을 해체한 뒤 버리는 이유는 저작권 보호 차원에서도 스캔한 책은 반드시 버리게 돼 있기 때문이다. 책이 아깝다고 했더니 “만약 나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책을 다 모으면 아마 나의 2층 방이 무너져내릴 것”이라며 웃는다. 일본 도쿄(東京)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장서가의 공간을 꿈꾸기 어렵다. 책을 뜯는 사람은 일본 유명대학 부설 인문학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대신 그는 아이패드에 전자책 코너를 만들었다.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면서 책을 찾아가는 속도가 전광석화다. 새로운 개인 서재인 셈이다. 실제의 공간은 협소하지만 디지털 세계로 들어가면 공간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2013 도쿄국제도서전’이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도쿄 빅사이트 전시장에서 열렸다. 이곳을 찾았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2층에 별도로 마련된 ‘전자책 전시장’이었다. ‘전자책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제대로 걸어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좁은 집을 감안해서 책을 스캔하는 일본학자를 떠올리며 전자책 시장의 성장이 빠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책을 또박또박 읽어주는 전자책도 등장했다.

하지만 미국전자책 유통사 아마존은 이달 초 기준으로 일본 전자책 시장에 진출한 지 단 1년 만에 전자책 단말기 시장 37%를 점유하며 시장 1위로 올라섰다. 반면 일본 출판사가 스스로 생산하는 전자책 콘텐츠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다.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곳은 ‘크리에이터 엑스포’였다. 사진가, 만화가, 화가, 소설가 등 개인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직접 부스에 전시하고 있었다. 숨어있는 창작자들이 창작실의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엑스포라는 밝은 공간으로 나왔다. 책을 내려는 편집자들은 직접 작품을 보면서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책 제작에 필요한 사진가나 소설가, 화가 등과 직접 계약을 한다.

전자책 전시장과 크리에이터 엑스포장이 북적북적한 데 비하면, 일반 서적 코너는 한산한 편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출판왕국’ 일본의 지하철 독서열기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몇년 전 도쿄의 지하철에서 80세는 됨직한 한 할머니가 전문적인 군사잡지를 읽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하철 한 칸 모두가 독서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모습에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도쿄국제도서전을 찾기 위해 올해 도쿄 지하철에 올라보니 한국처럼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본 출판 시장의 축소와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일본의 출판시장은 아직 튼튼하다. 전체 인구가 1억2730만 명이니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먹고 살 환경이 된다.

절벽으로 몰리고 있는 한국 출판 시장이 걱정이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출판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후에도 남을 책을 만드는 일이야 여전히 중요하지만, 청년세대에 맞춘 전자책 시장의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출판문법으로 승부할 필요가 있다.

예진수 문화부장

- 문화일보 2013.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