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보수동 책방들과 손잡기
전문가 "새로운 매력 창출해야"
서점들 "규모 영세해 변신 어려워"
국내 유일 헌책방 골목인 부산시 중구 보수동 일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올해로 37년째 책을 만들어온 한길사 김언호 대표(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는 최근 틈만 나면 부산을 찾고 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찾기 위해서다. 국내 유일의 헌책방거리인 보수동 골목을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 수 있을까. 요즘 그가 붙잡고 있는 화두다.
첨단 디지털 시대, 헌책은 구시대 유물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문화 콘텐트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22일 출판 관계자들과 보수동 책방 상인들, 부산지역 관계자들이 모여 ‘보수동 책방골목’의 앞날을 얘기했다.
◆60년 역사 과소평가 말아야=보수동 책방골목은 1950년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당시 지식공급소 역할을 했다. 많을 때는 70여 개 서점이 있었으나 현재 50개 남짓 남아있다. 좁다란 골목에 아담한 책방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교과서·참고서·고서적·인문서 등 다양한 책을 구비하고 있다.
이곳을 57년간 지켜온 김여만 학우서림 대표는 “맨날 찾아와 새로 들어온 책을 열심히 뒤지던 분 중엔 국문학자 최현배 선생도 있었다. 지난 세월 숱한 학자들, 그리고 애서가들과 함께해왔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주경업 부산민학회 회장은 “이 골목은 그 자체가 역사이며 부산 문화의 상징이다. 서울 청계천 책방골목처럼 사라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언호 대표는 “61년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부산으로 옮겨와 보수동 골목에서 받았던 문화적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모든 책에는 그 시대의 땀이 배어 있다. 이 골목을 정신적 문화유산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매력을 찾아서=단순히 옛 것에 대한 향수로는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다. 헌책 골목을 신기하게 여기는 관광객들이 늘고 있지만 그렇다고 책까지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보수동 골목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표가 붙는 이유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문화도 개발주의에 젖어있다. 모두 새것만 찾는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말을 되새겨야 한다. 헌책방들도 새로운 매력을 창출하고 가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출판 관계자들은 ‘현책방의 전문화를 주문했다. 장서가 박종일씨는 “일본에는 한국 고서를 취급하는 책방이 있을 정도로 전문화돼 있다. 이젠 책방도 이것저것 두루 취급하는 시대는 지났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종훈 대우서점 대표와 문옥희 우리글방 대표는 “전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워낙 영세하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자리에 참석한 책방 주인들은 “그간 보수동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일을 추진할 구심점이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좀더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부산 문화의 자존심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산=글·사진 이은주 기자
- 중앙일보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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