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응급처치·복원 실습 교육… 司書를 위한 '일일 책 병원']
찢어진 낱장에 한지 붙여 잇고 떨어진 책등, 압박붕대로 감싸… 곰팡이 슬면 지퍼락에 '격리'
압박붕대, 핀셋, 칼, 드릴, 의료용 가위, 수술 장갑, 자, 붓, 종이테이프, 한지, 스펀지, 중성풀…. 도구만 보면 성형수술을 앞둔 작업대 같다. 환자는 다름 아닌 책 '지구의 나이'. 현혜원 학예연구사는 찢어져 훼손된 책 낱장에 한지를 붙이는 '접합 수술'을 시연하는 중이다. "한지는 손으로 뜯어야 섬유소가 살아 있고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붓에 풀을 묻혀 살짝 얹는다는 느낌으로 붙여줍니다. 종이테이프는 안에서 밖으로 붙여 나가야 가운데가 울지 않고요…."
24일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관 2층에 있는 보존·복원 처리실. '일일 책 병원'이 열렸고 전국에서 도서관 사서(司書) 40명이 모였다. 멀리 경남 통영에서 온 사서까지 눈에 불을 켜고 '책 응급처치 및 복원 실습'을 받았다.
서울 종로도서관에서 온 이유성(52)씨는 '똑똑한 바보'라는 책 표지를 천연고무로 만든 스펀지로 문지르고 있었다. 경력 26년의 사서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는 처음. 10년 넘어 꼬질꼬질 묵은 때가 끼었던 책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이어붙일 한지에 핀셋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찢자 실오라기처럼 섬유소가 삐져나왔다. 중성풀(일반 산성풀과 달리 종이 보존에 좋다)을 칠해 파열된 부분을 수리한 그는 "우리 도서관 책 열 권에 한 권은 훼손된 상태"라면서 "이번에 배운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면 책을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까만 작업복을 입은 사서들은 집도하는 의사처럼 진지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사서 김진호(32)씨는 "고서(古書)를 수리·보존하는 데도 유익한 실습"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도서관에서 온 사서는 물에 젖어 뒤틀린 '2010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들고 와 "이런 책도 복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누런 흙탕물 얼룩이 남아 있었다. 실제로 장마철인 요즘 도서관으로 반납되는 책 중에는 비에 젖어 얼룩진 것들이 적지 않다.
도서관이 가장 무서워해야 할 것은 화재와 곰팡이였다. 현 학예연구사는 "곰팡이가 슨 책은 빨리 지퍼락에 넣어 격리시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밖으로 가져가 곰팡이를 털어내고 그늘지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말린 후 소독한 다음에 도서관이나 서가에 들여야 전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책등이 떨어진 경우에는 색깔이 비슷한 제본 천을 구해 덧대고 압박붕대로 싸서 하루 정도 두면 달라붙는다는 설명을 들을 때 사서들의 눈이 또랑또랑 빛났다. (박돈규 기자)
- 조선일보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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