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북앤수다]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8000만원 넘게 모은 독자 펀드, 새소설 홍보車 타고 전국 일주
사장 포함 전 직원 4명이지만 독특한 마케팅으로 승승장구… 출판강좌는 4년간 1000명 들어
"출판 현실 모두 푸념하는데 엄숙함·자부심 너무 지나쳐… 좀 '튀어도' 독자와 交感해야"
어수웅 기자
어수웅 기자
최근 출판가에 '마포 김 사장'이 '전국 제패'를 하고 돌아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원 충청 경상 전라도를 순례하며 독자들을 직접 만나고, 춘천 광장서적, 대전 계룡문고, 부산 영광도서, 경남 진주문고 등 지역 거점 서점의 판매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것이다. '마포 김 사장'이라는 낭만적 호칭으로 유명한 이 젊은 출판사 사장은 북스피어의 김홍민(37) 대표. 사장 포함 전 직원 4명의 미니 출판사다. 하지만 2005년 창사 이래 단 한 권의 예외 없는 장르문학 출간, 기발하고 엉뚱한 마케팅, 취향에 대한 연대로 결집한 열혈 독자들의 지지가 이어지면서, 북스피어는 작지만 강한 출판사의 모범 사례가 됐다. 그동안 펴낸 책은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등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와 '아발론 연대기' 등 판타지, 그리고 테드 창의 SF 등 90여종. 그가 깃발을 든 '독자 펀드'는 다른 출판사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고, 4주 프로그램인 김 사장의 '1인 출판 창업' 강좌는 지난 4년간 1000명 넘게 수강하는 출판계 최고의 인기 강좌가 됐다.
마포 김 사장은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그림자 밟기' 광고 필름을 입힌(래핑) 자신의 쏘나타를 타고 나타났다. 그는 "택시인 줄 알고 길에서 자꾸 사람들이 세운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전국 제패' 하고 돌아왔다는데.
"처음에는 독자 차량 15대에 똑같이 래핑을 해서 전국 투어를 계획했다. 함께 자동차 전용 극장도 가고, 드라이브한 뒤 고기도 구울 계획이었지. 그런데 차 버릴까 봐 그런지 3명밖에 신청을 안 하더라. 결국 마케팅 직원이랑 나, 두 대의 전국 투어로 급히 방향을 바꿨다. 망한 거지(웃음). 대신 지역 독자들과 만나 우의를 다졌다. 춘천에서는 의리있는 독자님께서 닭갈비를 샀고, 자기 집에 재워주기까지 했다. 새벽 3시까지 권커니 잣거니 마셨다."
그는 국민대 국문과 출신. 학창 시절부터 염상섭보다는 이우혁(퇴마록)을 좋아했다. 한 독자는 그를 '덕업일체'로 불렀다. 오타쿠(마니아)의 한국적 변용인 '(오)덕후'로서의 정체성과 직업으로서의 정체성이 한 몸이 된, 행복한 사례라는 것이다. 북스피어의 사시(社是)는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책 내용뿐만 아니라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지난봄에는 상반신을 탈의한 미녀가 달려드는데도 끄떡없이 책을 보며 '그거보다 재밌다'라고 외치는 자신의 웃통 벗은 사진을 책 광고로 쓰기도 했다.
장르 문학 전문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가 신작 소설‘그림자 밟기’광고 필름을 입힌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가 비스듬히 누웠다.
작가에 대한 팬덤(fandom)은 흔하지만 출판사와 출판사 사장에 대한 팬덤은 유례가 드물다. 장르 문학 전문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가 신작 소설‘그림자 밟기’광고 필름을 입힌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가 비스듬히 누웠다. /김연정 객원기자
―자칫 삼류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웃으며) '출판계 막장', 뭐 이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인문학 펴내는 출판사 선배들과 얘기하면서 느끼는 답답함이 있다.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자신이 특별한 사람인 듯 말하는 과도한 자부심. 난 불편하더라고. 그러면서 다들 출판사 어렵다고 한숨 쉬고, 재미있는 마케팅 뭐 없느냐고 내게 묻는다. 그래서 이런 거 해보라고 하면 '우리는 못 하겠어요' 하는 거지. 그러면서 늘 하던 똑같은 이벤트를 반복한다. 나는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남들이 안 하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 (마니아) 독자가 직접 교정·교열 보면서 함께 고기도 구워 먹고, 책 띠지에 숨겨놓은 암호 모아오면 선물도 주고, 우리 책 무대가 된 곳에 독자들과 직접 문학 기행도 함께 가고. 비록 당장 판매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이런 신뢰가 모여 지난번 독자 펀드가 성공했다고 믿는다."
작년 이맘때 마포 김 사장은 새 책 마케팅 비용 5000만원을 열흘 만에 자발적 독자 펀드로 모아 화제(본지 2012년 8월 27일자 A30면)가 됐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신작 '그림자 밟기' 역시 독자펀드를 모집, 현재까지 8000만원을 넘게 모았다. 책에 대한 독자 관심이 하루가 다르게 식어가는 출판 산업으로서는 예외적 쾌거였다.
―이 쾌거는 독자들의 측은지심일까, 아니면 의리일까.
"의리지. 그리고 어쩌면 작은 출판사가 살아남는 법이기도 하다. 어떤 출판사가 한 번은 추리 소설 냈다가 다음번에는 '미스 김 10억 만들기'를 냈다고 하자. 독자가 소속감이 생길까. 우리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문학을 우리 출판사가 계속 내줄 거라는 확신 때문에 호의가 있는 거다. 이번 펀드 모집에서 7000만원 이하로 모이면 아예 없던 일로 하려고 했다. 마감 전날인데, 2000만원 가까이 모자라더라. 그래서 출판사 블로그에 긴급 공지를 올렸다. 현재까지 얼마 모였고, 지금대로라면 쉽지 않다. 그랬더니 하루 만에 그 액수가 채워진 거다. 적금을 깬 독자도 있다. 이번에 또 SF(과학소설)를 냈는데, 독자들이 다음 번 SF로는 이런 책을 내보라고 우리 출판사 블로그에 제안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 독자들, 의리 있다."
책의 쾌락을 강조하는 북스피어 이색 광고.
책의 쾌락을 강조하는 북스피어 이색 광고. 김홍민 대표가 직접 모델로 나섰다.
―당신의 '1인 출판 창업'이 인기 강좌라고 들었다. 보람은.
"내 강의를 듣고 창업을 포기했을 때(웃음). 진정 하고 싶은 사람은 전력을 다해 도와주지만,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은 확실하게 포기시킨다. 지금 우리나라 출판사가 5만개다. 출판사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 창업이 너무 쉽다. 한 달이면 출판사 하겠다고 20곳이 신청한단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도 작은 출판사의 가능성이 남아 있나.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이 분야를 개척해서 지속적으로 책을 낸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최소한 시작할 때 10종은 준비해야 한다. 건방진 이야기지만, 어떤 산업이건 신규 인력이 들어오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 미국도 일본도 출판은 사양 산업이지만, 색깔 있고 성향이 분명한 책들은 살아남는다. 색깔 있는 출판사가 다양하게 생겨나는 것만이 출판계의 유일한 대안이다."
(어수웅 기자)
- 조선일보 201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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