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이와나미 서점 오카모도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등
일 지성 나침반 역할 꾸준
오카모도 대표는 “한·일 국민 감정이 악화된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올바른 역사인식과 반성을 촉구하는 언론·출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팔아야 살아남는다’. 분야를 막론하고 장사를 하는 기업이라면 생존을 가름하는 이 명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로지 ‘많이 팔리는’ 책만 만들려 한다면 과연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20여 권을 낼 수 있을까. 또 집필자만 800명이 참여한 『세계인명대사전』 같은 책을 낼 수 있을까.
세계 출판시장의 불황에도 사명감 하나로 100년을 버텨온 일본 출판사가 있다.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은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이다. 일본의 대표적 국어사전이자 백과사전 『고지엔』 으로도 유명한 이 출판사는 올해 100주년을 맞아 새로이 번역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과 『세계인명대사전』 외에 『일본의 역사』 시리즈 22권, 『일본의 사상』 시리즈 8권 등을 출간할 계획이다. 총 3만8000여 명 을 정리하는 『세계인명대사전』은 기획·집필에만 10년이 걸렸다.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책이 대량 팔릴 책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사회의 지적 기반을 다지고 문화의 저력을 키우기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죠.”
이와나미 서점을 이끌고 있는 오카모도 아쓰시(岡本厚) 대표는 지난 30일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1일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는 제8회 국제출판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출판시장의 불황은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인간이 사회에 속해 살아가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한 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류의 중요한 콘텐트는 결국 종이 매체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나미 서점은 1913년 도쿄 진보쵸의 헌책방에서 출발, 이듬해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내면서 출판사업을 시작했다. 27년 국내외 고전을 엄선해 싸게 제공하는 이와나미 문고, 38년엔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이와나미 신서를 창간해 중국 침략, 파시즘에 반대하는 책들을 잇달아 펴냈다. 조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일본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와나미 서점이 낸 진보 월간지 ‘세카이’(世界)를 통해서였다.
오카모도 대표는 지난 16년간 세카이 편집장을 지내고 지난 6월 사장으로 취임했다. “지금 일본인들은 ‘해양의 체르노빌 사고’라 불리는 원전사고를 겪으며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과연 정의란 무엇이고, 윤리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커졌죠. 이런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출판사가 살아남을 의미가 없는 거죠.”
글=이은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 중앙일보 201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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