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논설위원
동독의 예술원 회원이었던 작가 귄터 드 브륀은 1953년부터 8년 동안 도서관 사서를 지냈다. 그는 금서(禁書)를 정하는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나름대로 좋은 책을 살리려 애썼다. 사회주의에 충실하지 않더라도 평화주의를 담은 책은 우량 도서로 추천했다. 그러나 도서관은 그가 고른 책을 불량 도서로 낙인찍곤 했다. 브륀은 어쩔 수 없이 금서 목록에 서명했다.
▶브륀은 독일 통일(1990년) 6년 뒤 일흔 살에 자서전을 펴냈다. 그는 금서 목록을 떠올리며 "지금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더 나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나쁜 직책이라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동독 사서들은 통일 후 대부분 재교육을 받아 일을 계속했다. 독일 정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마자 도서관 통합을 추진했다. 서독 도서관장들이 동독 도서관의 임시 관장을 맡았다. 서독 표준에 맞게 도서관 운영과 책 분류 방법을 정리했다. 베를린에선 서독 도서관이 신간과 학술서만 모으고, 동독 도서관은 고문서를 주로 다루는 전문 도서관으로 거듭났다.
▶클라우스 자우어 훔볼트대 명예교수가 그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독일의 '도서관 통일' 경험을 들려줬다. 독일 국립도서관위원회 의장을 지낸 그는 "남북한 분단의 문화적 틈새를 줄이려면 도서관 통일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독일 도서관협회는 1500만유로를 마련해 책이 부족한 동독 대학들에 도서 구입비를 나눠줬다. 오랜 준비 끝에 2006년엔 국립중앙도서관 통합도 끝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서독의 출판 도시 프랑크푸르트와 동독의 문화 도시 라이프치히 두 군데에 뒀다. 두 도서관은 지금 자료를 모두 2900만점 통합 관리한 세계적 지식 정보 센터가 됐다.
▶남북한 도서관 교류는 2006년까지만 해도 활발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과 몇몇 대학이 나서 '김일성대 과학도서관 현대화' 사업을 펼치면서 도서관 업무 자동화를 지원했다. 그러나 그 후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 사업이 중단됐다. 요즘 상황에선 남북의 도서관 통일은 너무 아득할 정도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났다.
▶북한 국립중앙도서관엔 고려 때 시문(詩文) 선집 '동인지문(東人之文)을 비롯해 희귀한 고전 10만여부가 있다고 한다. 독일은 도서관 통일로 고문서를 여럿 찾아내 분단으로 끊긴 기록 유산의 맥을 이었다. 동독 도서관을 지원해 문화 격차도 크게 줄였다. 정치적 통일의 대미(大尾)를 16년이나 걸린 도서관 통일로 장식한 셈이다. 우리도 책을 통한 통일의 지혜에 눈을 떠야 하지 않을까.
- 조선일보 20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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