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 H>를 만드는 장성환 발행인(오른쪽)과 정지연 편집장 부부. 이들은 사람 냄새 나는 동네 매체가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 따뜻해질 거라고 믿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21) 동네 매체 만드는 장성환·정지연 부부
지금 ‘홍대앞’이라 불리는 곳은 비단 홍익대 앞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근 서울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쪽까지 커지는 중이다. 골목골목마다 하루가 다르게 새 가게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지역 정보는 한달만 지나도 구문이 되기 십상이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홍대앞을 5년째 속속들이 기록해온 이들이 있다. 홍대앞 동네잡지 <스트리트 H> 발행인 장성환(49)씨와 편집장 정지연(42)씨다. 2009년 6월 창간한 이 잡지는 홍대앞 카페, 서점, 문화공간, 관광안내소 등 30여곳에 달마다 3000부씩 깔린다. 그리고 매달 홍대앞 지도를 새로 만들어 싣는다. 카페, 공연장, 갤러리, 서점, 게스트하우스 등의 위치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지도는 잡지의 대표 콘텐츠다.
“2006년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홍대앞 지도를 만들어본 게 발단이었죠.” 인포그래픽(인포메이션+그래픽) 디자이너이기도 한 장씨가 말했다. 홍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군대에 다녀와 복학할 즈음인 1987년 홍대앞 반지하방에 작업실을 만들면서 이곳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서울의 변두리 낙후된 지역이어서 가난하고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들었어요. 시내에 있던 출판사도 많이 옮겨왔고요. 술집에 가면 미술가와 문인이 조우하는 광경이 흔했죠. 90년대 중반부터 인디 밴드 열풍도 가세해 다양한 문화가 들끓는 용광로가 됐어요.”
홍대앞 정보 빼곡히 담기 5년째
소문 타고 명물로 자리잡아
지역문화 알림이 겸 지킴이 구실
올해 안 포털사이트도 열 예정
인포그래픽 개념이 생소하던 1990년대 초반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창설 멤버를 거쳐 <주간동아> <과학동아> 등 잡지 아트디렉터 일을 하던 그는 당시 <여성동아> 기자였던 정씨와 유난히 마음이 잘 통했다. 사내 연애를 하다 1999년 결혼했다. 언론사를 그만두고 2003년 홍대앞에 ‘디자인스튜디오 203’을 차렸다. 203은 그의 첫 반지하방 작업실 주소에서 따왔다. 잡지 디자인이 주요한 일이다.
정씨 역시 언론사를 그만두고 나와 출판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책 쓸 준비도 할 겸 재충전도 할 겸 해서 2007년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곳에서 발행되는 수많은 동네잡지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심지어 맨해튼 안에서도 특정 거리만을 다룬 작은 잡지도 있더라고요.”
2009년 돌아와 보니 홍대앞은 축제, 갤러리, 공연장, 카페 같은 작은 취향들이 집적된 ‘문화 클러스터’가 돼 있었다. ‘이런 정보에 굶주린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남편과 의기투합해 잡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밥 벌어먹고 살기도 벅찬 와중에 어렵사리 잡지를 창간한 건, 우리가 홍대앞에서 뭔가 재밌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이곳을 기록하는 게 의미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돈이 안 벌려도 무조건 10년은 한다는 각오로 덤벼들었죠.”(장성환)
외부 작가에게 개방해 디자인한 <스트리트 H> 표지.
장씨가 지도와 디자인을 맡고 정씨는 기사를 썼다. 처음에는 둘이서 발품 팔아 하다가 나중엔 객원 에디터들이 무보수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원고료 안 받고 칼럼을 쓰겠다는 필자들도 생겨났다. 잡지는 점차 입소문을 타고 동네의 명물로 자리잡아갔다. 지난 6월에는 창간 4주년 특집호를 발행했다. 생계는 ‘디자인스튜디오 203’ 일로 이어갔다.
홍대앞은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해왔다. 창간호 지도에는 홍대 정문 부근과 공영주차장 거리를 중심으로 표기돼 있었다. 지금은 당인리발전소 인근 상수동·당인동,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북쪽의 연남동까지 모두 다룬다. 다달이 나오는 지도만 비교해 봐도 뭐가 없어지고 뭐가 새로 생겼는지 변화상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학이나 지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외부 작가에게 개방해 디자인한 <스트리트 H> 표지.
“처음에는 카페나 베이커리가 들어옵니다. 임대료가 오르면 술집이 들어오기 시작해요. 더 상업화되면 프랜차이즈 커피숍, 핸드폰 가게, 옷 가게, 심지어 에스피에이(SPA) 브랜드의 대형 의류매장까지 들어서지요. 그러다 그런 것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상권이 황폐화될 수 있어요. 신촌이 대표적인 예죠.”(정지연)
“진짜 홍대를 잘 모르는 분들이 프랜차이즈로 하는 술집이나 식당에 가요. 그런 곳에 갈 거면 굳이 홍대앞에 올 필요가 없죠. 홍대앞 큰길 주변은 임대료가 비싸서 재밌는 곳이 있을 수 없어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홍대앞다운 공간들을 발견할 수 있죠. 그래서 지도에서는 프랜차이즈 가게, 옷 가게처럼 지역성과 상관없는 곳은 표기하지 않습니다.”(장성환)
이들은 홍대앞 포털사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안 오픈이 목표다. 기존 지도 정보는 물론 너무 많아서 엄두를 못 냈던 작은 식당과 술집 정보까지 넣을 예정이다. 가게가 몇년 됐으며 주인의 전직이 무엇인지까지 넣어 운영철학과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게끔 하겠단다.
“대형 포털사이트 지도는 업데이트 주기가 빨라야 3개월입니다. 우리 사이트는 은하계에서 제일 빠르고 정확한 홍대앞 지도가 될 거예요. 꿈이 있다면 이렇게 잡지와 포털사이트를 만드는 플랫폼과 노하우를 다른 동네에도 전해주는 겁니다. 사람 냄새 나는 동네 매체가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 따뜻해지지 않겠어요?”(장성환)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 한겨레신문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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