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의 서가는 한글 자모의 디자인을 차용한다. 자모 모양의 책꽂이에는 상설 보관 도서가 아닌 도서관 측의 특선 도서가 꽂힌다. 출판도시문화재단 제공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권위적인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다. 청구기호들을 완장처럼 달고 서가에 앉은 책들은 지식의 성채를 지배하는 제왕이라도 되는 양 열람자들을 굽어본다. 쥐 죽은 듯한 고요함이 첫째 덕목이라는 듯 장엄한 도서관들은 오가는 열람자들의 옷깃까지 여미게 한다.
경기 파주시 문발동 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건물 1층(3,880㎡ㆍ1,176평)에 4월 문을 여는 인문학 도서관 '지혜의 숲'은 이 같은 기존 도서관들과 여러모로 다르다. 우선 30만권의 장서(향후 100만권까지 늘릴 계획)를 모두 자발적인 기증으로 마련됐다. 그리고 365일 24시간 누구에게나 문을 연다. 학문 분야별로 범주화한 분류가 주는 딱딱함을 벗어나기 위해 '지혜의 숲'은 장서 기증자 별로 서가를 나눌 예정이다. 어린이들도 책을 즐기도록 다양한 열람 편의시설도 마련한다.
'지혜의 숲'을 기획하고 개관을 주관한 출판도시문화재단의 김언호 이사장은 "(그 동안 닫혀있던) 정보와 지식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놓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김 이사장은 "(기존) 도서관은 책 좀 읽으려면 늦었다며 문을 닫는데 '지혜의 숲'은 언제라도 문을 열고 들어와 책의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김 이사장은 27일 '지혜의 숲' 도서관 개관 설명회에서 기증을 통한 도서관 장서 마련 방침과 관련해 "책의 수명을 연장하고 갈 곳 없어 버려지는 책들을 가치 있게 활용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기증자 별로 서가를 나누기 때문에 이들의 독서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서재를 통째 즐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혜의 숲'은 훨씬 덜 관리되고 더욱 친근한 도서관을 지향한다. 김 이사장이 출판도시문화재단을 맡은 지난해 4월 쉽게 사장되는 종이 책들을 보전하면서 동시에 보다 열린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후 정부로부터 서가 마련과 운영을 위한 예산 7억원을 따내면서 '지혜의 숲'은 구체화됐다. 공공기관 성격의 도서관에 걸맞게 상근 관리자들 보다 책을 좋아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에 의존해 운영해나갈 방침이다. 다만 비용 절감을 위해 대출서비스는 하지 않는다. 김 이사장은 "국가 예산과 민간 독서가들의 만남으로 완성되는 공간"이라며 "도서관 서가들도 기존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건물의 유휴공간에 들어서는 것이어서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개관 예정인 4월까지는 목표했던 30만권 이상의 장서가 답지할 전망이다. 일본 학계에서 활동중인 재일동포는 5,000권의 장서를 보낼 방법을 문의했고 1만권을 기증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한국고전번역원을 비롯한 많은 국가기관도 '지혜의 숲'에 힘을 더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책만 쌓인 공간으로 머문다면 박제된 도서관에 불과하므로 다양한 인문학 강좌와 공연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것"이라며 "곳곳에서 모여드는 장서들로 이곳이 인문학 부흥운동의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혜의 숲'은 숲과 훈민정음의 한글 디자인을 모티프로 해 꾸며진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를 설계한 김병윤 대전대 건축학과 교수와 김현선 김현선디자인연구소 대표가 마치 책의 숲에 들어온 듯하면서 온전히 열람자들에게 열려있는 도서관 디자인을 구상해냈다. 최고 높이 6m에 달하는 서가는 빽빽한 숲을 연상케 하고 서가 중간에 박히는 한글 자모 모양 디자인은 그 숲에서 열람자의 길을 인도하는 가로등처럼 빛을 발한다. 재단 측은 "서가 제작과 배치에 한 달여가 소요되고 책을 분류하는데 다시 한 달 정도 걸려 4월 중 개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입력시간 : 2014.01.27 21: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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