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2-12 09:28
[고삐 풀린 初中高 교과서] [中] 교과서 뽑는 '보이지 않는 손'… 출판사 總販(총판·판매 담당 대리점) 로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2/12/2014021200086.htm… [823]
[채택 위해 선물·접대까지]

교과서 選定 영향 미치려… 일부 總販, 학교운영委 활동
1년 단위로 출판사와 계약… 실적 내려고 로비에 사활
"교과서 내용은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교사들이 10개 넘는 교과서를 하나하나 다 살펴보고 결정하기도 쉽지 않고요. 결국 교과서 판매는 '총판의 영업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지난달 24일 A출판사 전(前) 총판 김모(44)씨에게 "학교에서 교과서가 채택될 때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선정하는 과정은 ①과목별 교사협의회를 거쳐 ②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한 뒤 ③학교장이 결정하는 순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정 출판사의 교과서가 선정되도록 총판들이 맹렬하게 로비를 하는 것이다.

총판은 전국 각 지역의 서점에 출판사별 참고서와 문제집을 판매하는 대리점이다. 총판의 주 수입원은 서점에 참고서를 납품하고 받는 10~30%(참고서 정가 기준)의 마진이지만, 교과서 채택률이 높아져야 해당 교과서와 관련된 참고서·문제집 판매도 덩달아 늘기 때문에 총판들이 출판사를 대신해 특정 교과서가 선정될 수 있도록 홍보하고 로비하는 주된 창구가 되고 있다.


교과서 채택을 위한 출판사의 로비 유형. 교과서 유통과정.
물론 총판들이 로비하는 대로, 각급 학교들이 교과서를 선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본지가 서울·인천·공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영업 중인 총판 직원 10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아무래도 교사들이 친분 있는 총판의 교과서를 채택해 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그러다 보니 출판사 영업력이 교과서 채택률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리 교과서 채택해 달라" 로비

10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교과서를 채택한 교사들에게 해당 출판사나 총판이 채택비로 현금을 주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최근에는 이 같은 현상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교사에게 선물을 주거나 향응을 제공하는 관행이 완전히 근절된 것도 아니다.

경기도 수원 지역의 총판 직원은 "교사 자녀가 몇 학년인지를 수소문해 참고서 세트를 선물하거나, 젊은 여교사에게 베스트셀러 소설책을 선물하기도 한다"고 했다. 인천에서 총판을 운영했던 김모씨는 "교사들에게 주말마다 골프 접대를 하고, 술집도 갔었다"며 "50만원을 들고 교장을 찾아가 교과서를 채택해 달라고 로비한 적도 있는데, 100만원 준 교과서가 채택돼 허탈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총판 사장들이 교과서 선정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의 지역위원으로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총판이 출판사를 대신해 학교에 교과서 선정 로비를 벌이는 이유는 총판과 출판사와의 불합리한 계약 구조 때문이다. 서울에서 20년 동안 총판을 해온 김모(51)씨는 "교과서 채택률·참고서 판매율이 낮은 하위 10~20% 총판은 매년 출판사와 맺는 계약에서 떨어져 나간다"며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으니 교과서 선정 로비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법 영업행위 눈감은 정부

지난해 9월 교육부가 발표한 '검·인정 교과서 선정 매뉴얼'에 따르면, 출판사나 총판은 교과서 선정을 부탁하며 학교에 금품은 물론 참고서조차 제공할 수 없다. 교과서 선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출판사와 총판의 로비에 대한 단속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총판 직원 김모씨는 "우리도 영업비용으로 그 많은 돈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혼자만 로비를 안 하면 경쟁에서 밀리니까 빚을 내서라도 한다"며 "정부가 제대로 감시해 불법 로비를 한 총판이 손해 보는 구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 조선일보 2014.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