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 위치한 인문학 책방이자 찻집인 ‘길담서원’은 우리 전통의 배움터인 서원을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키고픈 꿈을 담은 열린 공동체다. 지난달 27일 드로잉 교실 모임이 열리고 있는 메인홀의 모습.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9) 서울 종로 옥인동 길담서원
하나둘 자발적으로 모여들며
원하는 모임과 프로그램 만들어
십시일반 보태 옥인동 이사 뒤
공부방·편집실 등도 생겨나
공동체 꽃피울 더 넓은 길로
경복궁 서문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한 ‘서촌마을’. 서촌은 지리적으로 인왕산과 북악산을 잇는 성곽 안쪽에 위치한 청운동, 효자동, 통인동, 체부동, 옥인동, 경복궁역까지를 흔히 부르는 이름이다. 서촌에는 세종대왕 생가를 비롯해 600여채의 한옥과 많은 근대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최근에는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작가들의 예술공방이 속속 들어서면서 도심 속 옛 서울 정취와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산책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길담서원’은 요즘 ‘대세’인 서촌(옥인동)에 자리하고 있다. 히아신스와 데이지가 꽃망울을 드러낸 작은 정원 사이를 지나면 목재로 된 ‘길담서원’이라는 작은 문패가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면 40여평의 제법 널찍한 공간이 펼쳐진다.
‘길담서원’은 2008년 박성준 대표(전 성공회대 교수)가 만든 인문학 책방이자 찻집, 음악과 예술을 따라 찾아온 사람들이 우정을 나누는 공간이다. 이름에서도 이런 지향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박 대표는 “길담서원은 그 소리의 아름다움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의미상으로 보면 ‘길’과 ‘담’과 ‘서원’의 합친 말”이라고 설명했다. “길은 열려 있음을 의미하고 담은 공동체를 상징해요. 길을 통해서 다른 이와의 소통과 만남이 이뤄지는 공동체라는 뜻이죠. 여기에 우리 전통의 배움터인 서원을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켜 보자는 꿈을 담은 것입니다.”
박 대표는 이런 생각을 단초로, 6년 전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도 벌이는 공간을 꿈꾸며 길담서원을 열었다.
하지만 인위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인문학 책들을 비치하고, 공간을 작게 나눠 효율성 있게 쓰일 수 있도록 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스스로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청소년 인문학 교실’, ‘프랑스 어문 공부 모임’, ‘영어책 읽는 콩글리시 모임’, ‘경제공부 모임’ 등 다양한 공부 모임부터 찾아가는 클래식 음악회인 ‘책마음샘’,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전시하는 ‘한뼘 미술관’, 그림을 그리는 ‘드로잉교실’ 등도 생겨났다.
누군가 길담서원 카페에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모임이나 행사 아이디어를 올리면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댓글을 달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강사나 도움 줄 사람을 섭외하고 모임 날짜를 잡는 식으로 모든 모임이 시작된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창의성과 상상력, 자발성이 바탕이 되는 셈이다. 길담서원 이재성 학예실장은 “예를 들면 서원 한 켠에 놓인 피아노를 보고 한 친구가 ‘지인이 독일에서 포르테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작은 연주회를 한번 해보면 어떠냐’고 제안하면서 음악회(책마음샘)가 시작됐다”며 “그 뒤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또다른 연주자들을 섭외하고 발전시켜 한 달에 1~2번씩 토요일마다 정기적인 음악회가 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배우고 돕는다’는 지향 탓에 길담서원에서는 ‘대표’, ‘학예실장’ 등의 직함 대신 각자의 닉네임(별명)을 부른다. 박성준 대표는 ‘서원지기소년’, 이재성 학예실장은 ‘뽀스띠노’로 통한다. 심지어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여름나무님, 여기 시원한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한다. ‘호칭을 통한 관계의 민주화’라는 작은 실천인 셈이다.
지난 6년 동안 자생적인 생명력을 이어온 공간이지만, 길담서원이 지나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원래 통인동에서 시작한 길담서원은 지난해 12월 지금의 옥인동으로 ‘이사’를 했다. 건물 주인이 “세를 올려주거나 나가달라”고 요구하면서 위기가 닥친 것이다. 하지만 ‘길담서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은 서촌의 상업화 물결보다 더 강했다. 에스엔에스 등으로 소식이 알려지고 ‘누가 길담의 주인인가’라는 문제의식이 공유되면서 150여명의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이사비용을 보탰다. 금세 4000만원이 모였다. “위기가 기회가 된 듯해요. 통인동을 떠나면서 길담이 우리들에게 어떤 공간인가에 대한 성찰도 할 수 있었고, 또 한번 ‘자발성의 위대함’도 깨닫게 됐어요. 더불어 20평 남짓이었던 공간이 40평으로 늘어나는 ‘기적’도 만들어졌어요.”(이재성 학예실장) 서원지기소년 박 대표는 150여명 후원자들의 이름을 손수 한지에 하나하나 적은 ‘길담의 벗’이라는 콜라주 작품을 만들어 벽에 거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공간이 넓어지면서 길담서원에는 한뼘 미술관과 메인홀 외에도 ‘길담서당’(공부방), ‘웬델베리방’(밥상공동체 공간), ‘편집실’ 등도 생겨났다. 이런 공간들을 바탕으로 길담서원은 스스로의 먹거리를 고민해보는 ‘텃밭 인문학’과 버려진 천을 재활용하는 ‘바느질 인문학’, 길담의 정신을 담은 책들을 펴내는 작은 출판사까지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진행중이다. “길담서원의 프로그램이 고급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어요. 역사책 속 위인이 아니더라도 50년 넘게 한복집에서 일하며 자식들을 키워낸 70대 할머니의 바느질 솜씨와 그 안에 깃든 생각을 배우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알차게 할 수 있거든요.”(이 학예실장)
옥인동에서 ‘제2기’를 연 길담서원은 나름의 변화와 질적 도약도 꾀하고 있다. “통인동 시절이 ‘자율’이라는 개념을 중시했던 기간이라면, 옥인동에서의 2기는 ‘공율’에 대한 개념을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다채로운 모임 하나하나가 자율에 의해 움직이긴 하지만 자전과 공전처럼 이 자율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상호조율과 교류협력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죠.”(박성준 대표)
지난달 27일 박 대표, 이 학예실장을 인터뷰 하는 사이 이날 진행 예정인 ‘드로잉 교실’과 ‘독일어 기초문법’ 시간에 참여하는 길담의 벗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눈다. “다다음주 토요일 음악회도 올 거죠?”, “월요일 자원봉사자는 누구예요?”, “드로잉 교실 끝나면 한뼘 미술관에서 작은 전시회도 할 거래요.”
누구든 주인으로 참여해 각자의 자발적인 잠재력을 꽃피우는 길담서원은 지금 사방으로 더 넓은 길을 내고 있다. 그 사이사이 나지막한 담으로 둘러싸인 공동체가 들어서고, 공동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그 문화가 서촌을, 서울을, 아니 대한민국을 바꾸는 생명력을 움트게 할 수 있을까. 길담의 실험은 계속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 한겨레신문 20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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