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체포 다룬 스릴러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 영문판 출간
영국 "정서적 공감을 부르는 글"
영국 런던 한복판 레스터 스퀘어에 있는 서점 골즈보로(Goldsboro)는 책을 정가(定價)보다 100배 비싸게 판다. 할인에 익숙한 한국 독자가 보면 펄쩍 뛸 일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이 서점은 유명 저자가 직접 서명한 초판만 판매한다. 조지 오웰 자필 서명이 들어간 '동물농장' 초판 가격은 2500파운드(약 437만원)이다. 이 밖에도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등이 서가에 걸려 있다.
7일 오후(현지 시각) 골즈보로에서 한국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에 부지런히 사인을 하고 있었다. 영국 대형 출판사 맥밀란에서 '별을 스치는 바람'(The Investigation) 영문판을 낸 이정명(49)이다. 열흘 전 출간된 이 팩션(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소설)은 영국 최대 서점 워터스톤스에서 범죄소설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국 팩션 작가의 가능성 주목
8일 개막한 제43회 런던도서전에 참석한 이씨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글 창제의 암투를 다룬 '뿌리깊은 나무', 사도세자 사건의 진상을 캐는 화가 신윤복과 김홍도의 집념을 그린 '바람의 화원'을 합쳐 판매 100만부를 훌쩍 넘긴 한국 팩션의 대표 주자다. 맥밀란 측은 범죄소설의 인기가 특히 높은 영국 독서계에서 이 작품 성공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윤동주의 시(詩)를 불태운 일본인 교도관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한 작품. 영국에 이어 이달에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고 이탈리아·네덜란드·대만·일본 등에도 국내 출간 전에 판권이 팔렸다. 이번 영문판은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영문으로 옮긴 김지영씨가 번역했다. 이정명은 "윤동주가 체포된 이후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서 "소설에 담긴 윤동주의 시 20여편을 해외에 소개하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 영국도 "나치를 겪었다는 점, 예술이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정서적 공감을 부르는 소설"이라는 평이다.
◇"고마워, 조앤 롤링"
데이비드 헤들리(Headley·40) 골즈보로 대표는 컬렉터로 활동하다가 15년 전 서점을 열었다. 헤들리씨는 "저명하거나 될성부른 저자의 서명본을 사들인다"며 "희귀한 한정판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고객"이라고 했다. 골즈보로가 이렇게 해서 진열한 책은 3600종에 이른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이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 '쿠쿠스 콜링' 초판 서명본은 지난해 진열대에 포함됐다. '동물농장'과 같은 2500파운드로 가격이 책정됐다. "조앤 롤링은 '로버트 갤브레이스' 서명〈사진〉을 온종일 연습했다. 나도 작가가 조앤 롤링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초판 서명본 250권을 들여왔는데 이후 정체가 탄로 난 덕에 책값이 올랐다."(웃음)
서점은 '별을 스치는 바람' 초판도 250권 구입해 이씨에게 서명을 요청했다. 헤들리는 "대중적인 한국 장르소설 작가의 첫 영문판이고 다음 세대도 읽을 만한 모던 클래식"이라고 했다. 책값은 일단 다른 서점과 같은 16.99파운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조선일보 20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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