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한국문학번역원장, 서울대 교수·영문학
최근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부쩍 높아진 한국이 2012·2013년에는 베이징도서전과 도쿄도서전에서 각각 주빈국으로 초청받더니, 2014년 런던도서전에서도 주빈국(마켓 포커스 국가)으로 선정됐다. 물론 거기에는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공헌한 한류(韓流)의 인기와 확산, 최첨단 테크놀러지를 대표하는 삼성과 LG, 세계 5위의 자동차 제조사로 성장한 현대·기아차의 공이 컸다. 과연 최근 한국은 하이테크를 선도하는 정보·기술(IT) 강국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대국으로, 그리고 매력적인 대중문화의 나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만 갖고는 한국을 포괄적으로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 이제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담은 문학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학한류’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문학은 번역되고 출판돼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기에 문학한류는 필연적으로 출판한류와 긴밀하게 맞물리게 된다. 한국의 문학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두 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과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긴밀하게 협업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번에 한국문학번역원은 영국문화원과의 협의를 거쳐 영국에 잘 알려진 작가들, 또는 런던에서 작품을 출간했거나 곧 출간될 한국작가 10인을 선정해 런던도서전에 파견했다. 이들은 영국작가들과 만나, 도서전 세미나실에서 13개의 한·영 문학 교류 행사를 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런던, 케임브리지,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지에까지 가서 9개의 추가 문학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영국 언론의 관심도 대단해서 ‘가디언’과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 타임스’가 찾아와 인터뷰와 취재를 하고 있으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에 고무된 대형(大型) 출판사 펭귄에서도 한국문학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한국문학의 출간 확대를 기획하고 있다.
문학한류와 출판한류가 대중문화 한류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작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훌륭한 번역이 나와야 하며, 해외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작가와 뛰어난 전문 번역가, 그리고 능력 있는 에이전트와 명망 높은 출판사가 필수적이다. 해외 유명 대형 출판사는 상업적 이익의 전망이 없으면 책을 출간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섭외가 어렵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문학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국문학의 출간에 관심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 각광받는 한국 작가들은 모두가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관심사를 주제로 하되 소재는 우리 것에서 가져오는 사람들인데, 이번에 런던에 간 황석영, 이문열, 김혜순, 이승우, 신경숙, 김인숙, 한강, 김영하, 황선미, 윤태호 작가가 그러하다. 그중 영국 독자들도 좋아하는 웹툰작가 윤태호는 한국만화의 세계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번 런던도서전에는 영국에 와 있던 구효서 작가도 참석했고, 도서전에 초대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정명 작가도 영국의 대형 출판사인 맥밀란에서 출간된 ‘별을 스치는 바람’의 홍보를 위해 런던에 왔다. 짐작컨대 앞으로 한국문학 작품은 점차 해외 주요 출판사에서 출간될 것이고, 세계 출판계에서 크게 각광받게 될 것이다.
런던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영국 정부는 지대한 관심과 융숭한 예우를 베풀어주었다. 한국에서도 유진룡 문체부 장관이 개막식에 참석함으로써 주빈국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이번 런던도서전은 한국문학과 출판의 수준을 세계에 알리고, 더 나아가 한국과 영국 간의 문학 및 문화 교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행사다.
- 문화일보 2014.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