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10 10:27
런던의 한국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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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선 우리가 생산하는 문화가 대단한 줄 여기지만 밖에 나가보면 뜻밖의 초라한 대접에 놀랄 때가 있다. 영국 런던의 던트(Daunt)서점에 갔을 때도 그랬다. '유럽의 명문 서점' 스무 곳에 드는 이 서점의 책 진열 방식은 독특하다. 3만권의 책을 '문학' '인문' '사회과학' 식으로 장르별로 배열하는 게 아니라 나라별로 모아놓았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 코너'에 가면 현대 작가 창작집부터 오스트리아가 낳은 음악가 감상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있다. 영어권 독자들이 그 나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영어로 된 책들이다.
▶당연히 '한국 코너'엔 어떤 책들이 있나 궁금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Korea'라는 문패는 없었다. 파키스탄,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도 버젓이 나라 이름을 걸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한국 관련 책들은 독립된 코너 없이 홍콩과 대만 사이에 몇 종 꽂혀 있었다. 그나마 사전류나 6·25전쟁, 한국 여행가이드 같은 것들이 많았다.
만물상 일러스트
▶걸핏하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을 들먹이던 나라의 국민으로선 낯뜨거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서점을 탓할 수도 없었다. 우리 창작물을 영어로 빼어나게 번역한 책이나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능력 있는 영어권 필자들의 책이 그만큼 적은 것이다. 몇 달 전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어제 런던도서전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영어로 번역된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과 이정명의 추리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이 런던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마당을 나온…'은 100년 역사를 가진 포일즈 서점 워털루 매장에서 소설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별을 스치는…'은 대형 서점 워터스톤스의 트라팔가 매장에서 '소설 베스트'로 꼽혔다. 영국 출판계는 한 해 나오는 책 가운데 번역서가 2.5%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이다. 더구나 문학서는 그중에서도 4.5%밖에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두 책이 거둔 성과는 대단하다.
▶영문판 '마당을 나온…'과 '별을 스치는…'은 모두 영어 전문 번역가 김지영씨 작품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김씨는 3년 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영어로 옮겨 아마존닷컴 종합 순위 20위권에 올려놓았다. 한국 문학의 세계 진출에서 좋은 번역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실감한다. '도민준'과 '별 그대'만 능사가 아니다. 대중문화가 이끄는 한류와 함께 활자(活字)와 연관된 지식 문화도 세계인의 눈길을 모을 수 있어야 한국은 진정 매력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

/김태익 논설위원

- 조선일보 2014.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