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제43회 런던도서전이 10일 막을 내렸다. 8일부터 3일 동안 세계 114개국에서 온 2만5000명의 출판인들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더 좋은 책의 판권을 계약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런던도서전은 단순히 ‘출판인의 축제’라기보다는 ‘치열한 출판 비즈니스 현장’으로 보는 게 옳다. 영국에서 확인한 한국 출판의 가능성을 3인의 국내외 출판인에게 들어봤다.
“때가 왔어요”
■ 지영석 국제출판협회(IPA) 회장
“한국 출판 세계 진출, 이제 막 시작”
지영석 국제출판협회장은 세계 최대 출판그룹인 미국 엘스비어사의 회장이다. 엘스비어의 자회사인 리드 엘스비어(Reed Elsevier)사는 런던도서전 등 전세계 600개 전시회를 운영한다. 9일 런던에 있는 리드 엘스비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한국 출판의 세계 시장 진출은 아직 시작 단계”라면서도 “이제 (한국 출판이 인정받을)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국제출판협회 회장에 당선됐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이 협회는 저작권과 출판인 권리 보호 등을 위해 1896년 설립된 국제 기구로 한국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비롯해 78개의 출판단체가 가입해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황석영, 이문열 작가의 작품부터 어린이책, 웹툰에 이르기까지 한국 출판은 경쟁력이 있다”며 “케이팝, 한국 드라마 등으로 영미권에서도 한층 친밀해진 한국의 이미지가 보탬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번역’과 새 시장 개척에 대한 ‘투자’를 한국 출판의 과제로 꼽았다. “작가 개개인이 알아서 세계 시장에 발을 내딛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며 “좋은 작품이 잘 번역될 수 있는 환경, 한국 출판사가 한국 책에 관심있는 해외 출판인과 손이 닿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출판계 불황이 깊다는 좌절보다는 전자책 등 새로운 흐름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긴 안목’과 전자책에 제값을 쳐주는 정책 등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선미는 보물”
■ 줄리엣 마베이 영국 원월드 출판사 대표
“황선미는 우리의 보물, 다음 작품도 관심”
런던도서전이 개막하기 하루 전인 7일 밤, 영국 런던의 원월드 출판사에서는 황선미 작가만을 위한 파티가 열렸다. 그의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영국판 출간과 동시에 포일스 서점의 지점 두 곳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파티에는 출판사 직원 전원과 <마당…>의 미국 에이전시, 미국판 편집자, 이탈리아 에이전시 등이 모두 모였다.
“황선미는 우리의 보물입니다. 우리 출판사가 그와 그의 책을 만난 것은 너무도 큰 행운입니다.” 줄리엣 마베이 원월드 대표는 이렇게 소감을 밝히며 잔을 높이 들었다. 그는 “황 작가의 작품이 내게는 처음으로 읽어본 한국 문학이었다”며 “특유의 섬세한 감정 표현과 스토리 진행에 매혹됐다”고 밝혔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부활절에 <마당>을 출간하기로 하는 등 여러 나라 출판사들이 이 책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런던도서전에 한국 에이전시가 들고온 황선미 작가의 최근 작품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의 판권 계약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한국어판을 영어로 초벌 번역해야 한다. 그는 “황 작가의 책이 많은 영국인들을 감동시키고 있으며 이런 감성은 앞으로 한국이 아닌 세계 어디에서도 통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전자책 개척”
■ 김석환 예스24 COO
“아마존, 한국에선 성공 못할 것… 노안용 전자책 단말기 올해 출시”
“아마존이 한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석환 예스24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자신있게 말했다. “월마트가 한국에서 통하지 않았듯 아마존이 한국화하기보다는 다른 나라에 진출하던 방식대로 밀고 나간다면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7일 런던에서 열린 전자출판 관련 ‘디지털 마인즈 콘퍼런스’에 참석한 그는 전자책 시장 개척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올해 안에 노안으로 책 읽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안경 없이도 읽을 수 있는 전자책 ‘소프트웨어 아이글라스’를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대학에서 재무를, 대학원에서 정보공학을 전공한 뒤 4년 전부터 예스24 출판 부문 운영에 뛰어든 그는 전자책 단말기의 기술 혁신을 줄곧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최고의 인력을 끌어모아, 안경을 벗고 시력에 따라 단말기를 조정해 볼 수 있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며 “기존에 전자책을 읽지 않던 독자를 끌어들여 시장이 커질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런던도서전에 차려진 한국 전자출판관에는 3일 동안 다양한 나라에서 온 500여명의 출판인이 찾아와 사업과 관련한 상담을 했다. 오렌지디지트코리아, 아이이펍, 와이팩토리 등 참여 업체들은 영국, 미국, 인도, 캐나다, 중국의 출판사와 전자책 솔루션 수출부터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런던/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한겨레신문 2014.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