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24 09:56
'日이 임진왜란때 약탈해간 조선책… 北에 인터넷 전해진 것과 같은 충격'
   http://news.donga.com/3/all/20140424/63001477/1 [972]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조선 책 약탈 수준은 ‘문화적 재앙’이었습니다. 특히 유학 관련 서적은 전후 씨가 마를 정도라 중국에 가는 조선 사신단의 주요 임무가 약탈당한 책을 다시 구해 오는 것일 정도였으니까요. 역설적인 것은 이런 문화적 재앙이 일본 지식사회에 조선 문화에 대한 존경이 드높아지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피터 코니스키 교수(동아시아학)는 영국 내 대표적인 한국학·일본학 전문가다. 석사 때 한국어와 일본어를 전공했고 옥스퍼드대에서 19세기 일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아시아학과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한중일 3국 간의 도서 교류와 그 영향을 연구한 ‘동아시아의 책의 역사’(케임브리지대 출판부)를 펴내기도 했다. 17일 아산서원에서 ‘1590년부터 1860년 사이 일본에 있던 조선 책’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 그를 만났다.

코니스키 교수는 임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책이 일본 지식사회에 미친 영향을 “오늘 당장 북한 주민 전체가 자유로이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됐을 때 받을 충격”에 비유했다. “당시 퇴계(이황)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느냐면 일본 서적상의 책 목록에서 퇴계의 이름 뒤에는 ‘선생’이라는 경칭을 붙일 정도였습니다.”

조선 책과의 접촉은 지식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도 일본 사회에 큰 자극이 됐다. “일본에선 17세기나 돼야 유학자 하야시 라잔(林羅山·1583∼1657)에 의해 대학(大學) 일본어판 언해(諺解)가 나옵니다. 이 책은 ‘언해’라는 제목부터 (조선에서 1590년 발간된) 대학 한글 언해본을 빼다 박았어요. 한글 언해본이 모델이었으니까요. 권근의 ‘입학도설’ 같은 유학 입문서조차 조선 사회의 학문 대중화의 전범으로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조선의 의서나 문학서가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도 컸다고 했다. “일본어로도 번역 출간된 허난설헌 시집은 그간 도덕책에 한정됐던 일본 여성 독자들에게 문학서 읽기에 눈을 뜨게 한 책이었습니다. 당대 동아시아 의학지식을 집대성한 허준의 ‘동의보감’은 도쿠가와 막부가 직접 출간을 맡았고 막부의 수장 쇼군이 원활한 보급을 위해 ‘값을 낮추라’고 지시했습니다. 유성룡의 ‘징비록’도 조선인 관점의 임진왜란사라는 희소성으로 수요가 많았어요.”

조선이 혹독한 약탈을 겪고도 임란 이후 쓰시마 섬이나 왜관을 통해 책을 제공한 사실에도 주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문화재 약탈을 겪은 폴란드나 러시아는 전후 문화재 교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문명국’으로 여긴 조선은 (문명의 상징인) 책 제공을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에 끼친 조선 문화의 영향을 축소하고 한반도를 중국 문명의 단순한 ‘전달 통로’로 폄하하는 식민사관에 대해 단호히 반박했다. “역사적 사실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지 않고서는 학자라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 약탈당한 각종 고문서와 서적의 반환 가능성에는 현실적인 접근을 제안했다.

“약탈 입증 기록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사실상 반환이 쉽지 않을 겁니다. 디지털 기술로 복사본을 만들어 한국의 도서관이나 연구자와 공유한다면 학술적 가치가 높은 이 사료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