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서·비평서·자서전 등 망라
작년보다 65종 늘어 231종 발행
아파트 숲 벗어난 내집 관심증가
요리책 보듯 실용서 보듯 즐겨
“책에서 집 싸게짓는 희망 찾아”
“건축관련 책이 부흥기를 맞고 있다.”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인 ‘예스24’ 의 윤미화 프로덕트마케팅팀 대리는 몇년전 시작된 건축 관련 책 출간 붐이 다양한 내용으로 번지고 있는 올해를 ‘부흥’이라고 표현했다. 올초부터 8일까지 집짓기·건축 관련 제목을 달고 발행된 책만 231종.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5종이나 늘었다. 그는 “‘나에게 맞는 주거 방식’을 찾는 독자의 수요를 파악한 출판사들이 다양한 기획을 하면서, 한 권이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여러 건축 서적이 골고루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청춘, 유럽건축에 도전하다>(효형출판), <스페인은 건축이다>(오브제) 등 서구의 주요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들은 이미 넘쳐난다. 지난달 나온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돌베개)는 외국인 교수가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 대지 21평의 낡은 한옥을 구입해 개조하는 과정을, 공사를 도맡은 도편수의 시각에서 다뤘다. 5월8일 발행된 <못된건축>(푸른숲)은 새 서울역사를 ‘기차역의 전통적 관문 역할을 포기하고 쇼핑센터에 밀리고 주차장에 치인 자투리 건물, 건축을 향유하는 시민과 여행객은 옆구리로 밀려난 토끼굴’로 규정하는 등 대한민국 주요 건축물에 마구 칼을 들이댄다. 통렬한 건축 비평서다. 여기에 <알바루 시자와의 대화>(동녘), <나, 건축가 구마겐코>(인그라픽스) 등 거장들의 내면을 깊이있게 보는 인터뷰, 자서전까지 가세한다.
대형건설업체가 건축공사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아파트 공사에 집중하는 현실. 대형건설사의 협력사 또는 하청업체가 아니면 건축과 졸업생들조차 일자리를 얻지 못해 ‘손가락을 빨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건축 서적 출판 부흥’은 어떤 의미일까.
출판계에선 지난 2004년 본격화된 파주출판단지 조성 과정에서 출판사와 건축가들의 소통 통로가 트이고, 비주얼이 강화된 책을 선호하는 출판계의 기호가 맞물리며 건축관련 서적 발행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중적 수요보다는 출판업계의 의도가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아파트 가격이 정체되면서 획일적인 주택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번졌다. “아파트가 재테크 수단으로 수명을 다하며 자연스레 삶에 온기를 더하는 공간으로 내집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며 건축 서적의 대중적 수요가 증가했다”고 효형출판사 김윤회 팀장은 말한다.
특히 2011년 출간 이후 큰 관심을 모았던 <두 남자의 집짓기> 이후 30~40대들이 건축 서적의 주 소비층으로 등장했다. 당시 이 책을 기획했던 도서출판 마티의 정희경 대표는 “건축 서적 독자는 주로 30대 이상, 특히 남성이다. 이들은 인테리어, 요리 잡지처럼 건축서적도 취미·재미의 도구로 소비한다”고 말했다. “마치 텃밭이 없는데 나무나 채소에 관심을 갖고, 남자들이 요리책을 즐겨보는 것처럼 일종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우리 안에 내재한 집에 대한 집착을 실현하려는 욕구가 작동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주연 건축평론가는 “여전히 집에 대한 소유 욕구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건축 서적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삶의 터전인 집을 싸게 지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려는 것이다. 싸게 집을 짓는 실용서가 많이 읽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땅콩집을 지은 제법 견실한 시공사도 부도로 문을 닫았다. 현실에선 당장 싼 가격에 집을 지을 시공사조차 찾기 어렵다.”(정희경 대표)
자칫 건축 서적 부흥이 건축의 사회적 공익성, 전문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주연 평론가는 “건축 출판의 확대는 건축과 대중의 소통 확대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싼 가격에 집을 짓는게 좋은 건축이라는 오독을 불러 올 경우 오히려 건축계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 한겨레신문 20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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