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08 11:13
장서 더미에 질식 직전… “대학도서관 살려주세요”
수도권 모 대학 4학년 조모 씨(27)는 대학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늘 답답하다. 한 사람이 오가기에도 좁은 책장 간격과 빈 공간 없이 빽빽하게 놓인 책 때문에 잠시 책을 들여다볼 공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자료실에 마련된 200여 석의 책상은 늘 만원이다. 이마저도 매년 늘어나는 책들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조 씨는 “책이 도서관을 완전히 점령한 셈이라 정작 책을 보려는 이용객에게 불편을 줄 정도”라고 말했다.

전국 대학도서관이 해마다 늘어나는 책을 감당하지 못해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 대부분이 설계 당시 보관 가능한 책 수를 이미 넘겼거나 한계에 가깝게 보관하는 탓이다. 일부 대학도서관은 넘치는 책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건물 곳곳에 금이 가 학생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4일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에게 제출한 ‘2012 거점국립대학 도서관의 최대 적정 소장 책 수 및 소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9개 국립대학 중 6개 대학의 도서관이 최대 소장할 수 있는 도서 수를 초과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대 중앙도서관은 현재 217만여 권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최대 한계치인 150만 권을 넘긴 뒤에도 매년 8만∼10만여 권의 책이 새로 들어오고 있다. 경북대 김현경 중앙도서관 기획홍보팀장은 “이용률이 낮은 책은 한곳으로 몰아 보관하고 있지만 이제 몰아놓을 공간조차 남지 않았다”며 “한 해 평균 2만여 권을 폐기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책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현행 도서관법에 따르면 도서관은 연간 보유 도서의 7%를 초과해 폐기할 수 없다.

넘치는 책의 무게로 학생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경북대 중앙도서관은 지난해 10월 건물 정밀안전진단을 한 결과 ‘내구성 및 기능성 저하 방지를 위한 보수 및 보강이 필요하다’는 진단과 함께 C등급을 받았다. 도서관의 기둥과 보가 책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한 탓이다. 안전진단 결과는 A등급부터 E등급까지 나뉘는데 D등급부터는 정밀진단 결과에 따라 사용이 제한될 수 있다.

다른 대학의 사정도 비슷하다. 전남대 도서관은 100만 권을 보관할 수 있지만 현재 130만 권을 넘겼고 강원대도 한계치인 65만 권을 훌쩍 넘긴 95만여 권을 보관하고 있다. 한 도서관 관계자는 “자료실과 열람실 등 도서관 전체는 이미 포화상태”라며 “도서관을 매년 늘릴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학재 의원은 “사립대들도 설계 당시 보관 가능한 책 수를 넘긴 곳이 상당수”라며 “이대로 책만 쌓아가다간 도서관 건물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도서관 신·증축 및 대출률 낮은 책 몰아놓기, 전자책 활성화 등 여러 대책을 내놓지만 근본 원인을 외면한 임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서관 건물의 신·증축은 시간과 예산이 만만찮게 들고 매번 늘어나는 책에 맞춰 건물을 늘리기란 불가능하다. 전자책 또한 각각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필요한 모든 책을 소장하겠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각 대학이 같은 책이라도 무조건 소장하려는 욕심 때문에 이런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도서관연합회장인 곽동철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장서의 질이 아닌 규모로 대학도서관을 평가하는 그릇된 인식이 이러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공동보존서고’를 마련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인접한 몇몇 대학도서관이 협약을 체결해 대출률이 낮은데 중복 보유한 도서는 일부만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보관하고 나머지는 폐기하는 방식으로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 호주 빅토리아 주에서는 디킨대 등 이 지역 10개 대학도서관이 공동으로 CARM(CAVAL Archival and Research Materials) 센터라는 공동보존서고를 마련했다. 이용률이 낮은 연구자료와 도서 등을 보관하고 각 대학들이 공동 소유 방식으로 운영한다. 소속 대학에서만 책을 빌릴 수 있는 국내 대학과 달리 이 지역 대학생들은 타 대학 도서관에서도 자료를 대출할 수 있다. 캐나다는 2002년부터 ‘대학상호대출협약’을 체결해 캐나다 전역의 대학생, 교수 및 교직원들이 어느 대학도서관에서도 직접 대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곽 교수는 “책을 많이 갖고 있다고 도서관 가치가 높다고 말할 수 없고 당장 대출률이 낮다고 책을 폐기하는 것 또한 위험한 발상”이라며 “결국 대학이 책 욕심을 버리고 공동보존서고를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2012.10.5
http://news.donga.com/3/all/20121005/498648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