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1-28 13:21
‘잡지 전성시대’는 갔지만 ‘신잡지 전성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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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송파구 송파책박물관이 ‘잡지 전성시대’를 주제로 1월11일부터 8월까지 기획 특별전을 연다. 국내 최초의 근대 종합 잡지 <소년>, 순수 현대시의 출발을 알린 <시문학>,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선데이 서울> 등 대중의 사랑을 받은 주요 잡지 15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잡지 전성시대’ 전시관 입구
(사진2) 송파책박물관이 관람객 300명에게 설문해 선정한 ‘나의 인생 잡지’.
(사진3) 여닫이 문을 열면 금기를 깨뜨려 오히려 성공한 잡지를 볼 수 있다.
(사진4) 관람 도중 휴식을 취하며 나만의 엽서를 만들 수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사진5) ‘잡지 전성시대’를 기획한 김예주 송파책박물관 학예연구사.



송파책박물관 8월까지 근현대 잡지 기획 특별전 ‘잡지 전성시대’ 열어


시사·문학·여성·어린이 등 150여 점
시대 흐름과 대중 취향 엿볼 수 있어
“잡지 망한다지만, 좋은 잡지 늘어나
편집자의 혜안으로 선별한 내용 빛나”


“디지털 매체가 발전하기 전에는 잡지가 시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매체였죠. 잡지에 스며 있는 내용을 통해 당시의 문화와 대중의 취향, 시대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송파구 송파책박물관이 ‘잡지 전성시대’를 주제로 1월11일부터 8월까지 기획 특별전을 열고 있다. 국내 최초의 근대 종합 잡지 <소년>을 비롯해 여성 교양 잡지 <여원>, 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주간지 <선데이 서울>까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은 150여 점의 잡지를 한자리에 모았다. 김예주 송파책박물관 학예연구사는 21일 “종이 매체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희미해진 기억 저편에 묻어둔 낡고 때 묻은 잡지들과 마주하는 기회를 통해 잡지가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잡지 전성시대’는 1부 ‘시대의 목소리를 담다’, 2부 ‘여성, 다양한 나를 표현하다’, 3부 ‘미래의 꿈나무를 키우다’, 4부 ‘취향대로 골라보다’, 그리고 관람객이 직접 선정한 잡지로 꾸민 테마 전시 ‘내 기억 속의 서랍을 열다’ 등 다양한 주제로 구성됐다. 김 학예연구사는 “문화 불모지에서 유일한 소통의 창구가 되어준 잡지, 아버지 월급날 행복함을 만끽하며 받아들었던 잡지, 아득한 사춘기 시절 문학소녀를 꿈꾸게 했던 잡지까지 다양한 추억의 잡지를 만나볼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잡지 역사는 독립협회가 1896년 11월 기관지 <대조선독립협회회보>를 발간하면서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 창간된 <개벽> <삼천리> <청춘> 등에는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정보와 함께 문학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문학 작품이 수록됐다.

해방 이후에는 <희망> <사상계>를 통해 사회문제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으며, 문인들은 <현대문학> <자유문학> 등을 발행해 국내 문학 세계를 이끌었다. 이후에도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뿌리깊은나무> <마당> 등은 아름다운 표지를 지향하고 가로쓰기와 순한글 쓰기, 이미지 자료를 활용해 대중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일제침략기 국권 회복을 위한 정치단체 대한자강회가 발행한 <대한자강회 월보>(제6호, 1906년 12월)는 송파책박물관이 소장한 잡지 중 가장 오래된 잡지다. 제6호에는 문명론, 일본의 자치 제도, 교육 학원론 등의 글이 실렸다.

간행물의 성격과 시대의 정서를 담은 잡지의 ‘얼굴’ 격인 표지를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맛이 있다. 많은 문예지가 화가의 그림을 표지로 사용했는데 국내 화단을 이끌어온 김환기, 이중섭, 천경자 등의 화가는 자신만의 화필로 잡지 표지를 장식해 문예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현대문학사가 1955년 창간한 국내 최장수 문학잡지 <현대문학>은 유명 화가의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했다. <문학사상>은 화가들이 문인의 얼굴을 그린 표지로 유명한데, 1972년 10월 발행한 창간호는 구본웅 화가가 시인 이상의 얼굴을 그려 표지로 실었다. 일제강점기 신문관에서 1914년부터 발행한 <청춘>(제3호, 1914년 12월) 표지는 한국 최초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이 그렸다. 김학예연구사는 “1960년대 이후 경쟁이 심화하면서 출판사들이 독자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표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창작과 비평> <뿌리깊은 나무>는 파격적인 편집 디자인으로 국내 잡지 디자인의 이정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이전 잡지계에는 암묵적인 금기가 있었다. 잡지 이름과 본문을 한글로 쓰거나, 본문을 가로쓰기하거나, 잡지 이름이 네 글자가 넘거나, 너무 의미 있는 표지사진을 쓰거나, 잡지 두께가 두툼하지 않거나, 부록이 없으면 망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런 금기를 깬 것이 <창작과비평> <뿌리깊은 나무>였다. <창작과비평>(창간호 1966년 1월)은 본문 가로쓰기를 최초로 시도한 잡지다. <뿌리깊은 나무>(창간호 1976년 3월)는 순한글 잡지 이름과 순한글 본문, 얇은 두께로 파격을 더했다. 이 두 잡지 외에도 분야별로 <씨알의 소리>(창간호 1970년 4월)는 네 자가 넘는 잡지이름을 사용했고, <마당>(창간호 1981년 9월)은 박경리 작가의 ‘의미 있는 손’ 표지 사진으로 유명하다. <샘이깊은물>(창간호 1984년 11월)은 부록 없이 나온 최초의 여성교양 잡지다. 김 학예연구사는 “이들 모두 금기를 깨고 파격적인 편집을 시도해 성공을 거둬, 잡지스타일을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여성 잡지는 1906년 6월 유일선과 신채호가 최초의 여성 잡지 <가뎡잡지>를 창간한 이후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했다. 1950년대 이후에는 교양 있는 여성의 필수품이었던 <여원>(창간호 1955년 10월)을 필두로 현모양처라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제시했다. 1970년대는 인기 여성 잡지에서 패션, 미용과 관련한 화려한 화보가 등장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여성들의 다양한 표현 욕구에 발맞춰 여성 잡지가 전문화되고 세분화됐다.

다양한 아동 잡지가 1920년대부터 출간되고 ‘어린이’ 개념이 사회에 보편화하면서 어린이는 미래의 주역으로 존중받을 수 있게 됐다. 1952년 새벗사에서 창간한 <새벗>은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읽을 책이 부족한 어린이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했다. 1960년대 이후 교양, 오락, 1970년대 이후에는 만화책, 소설책, 과학 잡지 등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전쟁 이후 청소년문화의 상징이 된 <학원>은 한글세대의 성장으로 동시대 일간지에 버금가는 판매 부수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텔레비전이 보편화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인쇄 매체가 대중의 유일한 오락 수단이었다. 1920년대 최초의 성인 대중오락 잡지 <괴기>가 등장한 이후 여러 잡지가 출간됐다. <야담> <아리랑>과 같이 소설작품이 가득한 잡지부터 <선데이 서울> 같은 성인 잡지, <씨네21> <스크린> 등 예술 잡지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한쪽에서는 잡지가 몰락하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독자의 취향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낸 좋은 잡지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어 ‘신잡지 전성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김 학예연구사는 “너무 많은 정보가 뒤죽박죽 혼재해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 편집자의 혜안으로 선별한 양질의 정보를 담은 잡지를 읽는 것도 좋겠다”며 잡지 읽기를 권했다.

cslee@hani.co.kr



-한겨레신문. 이충신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202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