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을 염두에 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모임에서 얘기하다 보면 다들 한두 번쯤 생각해 본 눈치다. 주말농장 몇 평 분양받아 텃밭을 가꾸면서 준비운동에 들어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선뜻 결단 내리기는 수월하지 않다. 현재 하는 일에 매여서만이 아니다. ‘남자가 장만하자마자 후회하기 시작하는 세 가지는 별장·요트·애인’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여유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지 싶다. 공통적인 고민을 요약하면 교육·의료·문화 인프라다. 시골이 대체로 열악하다. 낯선 땅에서 텃세에 시달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덤이다.
자식교육이 마무리 단계라면 일단 교육은 빼자. 나이 들수록 심각한 의료 문제는 반드시 챙기라고 경험자들은 말한다. 공기 좋은 시골이라고 갔다가 60대 후반부터 부부 중 한쪽이 자꾸 고장 나서 승용차로 병원 모시고 다니자니 피차 죽을 맛이란다. 마지막으로, 문화 인프라는 베이비붐 세대를 꾀려는 지자체들이 반드시 챙겨야 할 조건이다. 삶의 질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2 지역문화지표 개발 및 시범 적용’ 결과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본능적으로 어느 지역 문화 인프라가 가장 좋은지 눈길이 쏠렸다. 연구는 예전에 소홀했던 정성(定性) 측면과 지역특성을 보완하는 등 상당히 정밀하게 이뤄졌다. 놀라운 것은 ‘청원군의 힘’이었다.
특별·광역시 산하 구(區)를 제외한 전국 158개 기초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총 38개 문화지표를 측정한 결과 시 단위에서는 경기도 성남시가 1위를 차지했다. 군 중에선 충북 청원군이 1위였다. 같은 기초단체라도 사실 시와 군은 애초 상대가 안 된다고 봐야 한다. 전체 순위 50위권 내에 군은 불과 5곳(청원·양평·해남·거창·영암)뿐이다. 세부 지표를 보면 경주시는 문화예산 비중(53%)에서, 전주시는 인간문화재 보유(24명)에서 각각 최고였다. 하지만 시 전체가 문화재인 경주나 ‘소리의 고장’인 전주를 생각하면 놀랍지 않다.
청원군은 군내 서점 수가 132개로 포항시(170개)에 이어 전국 2위다. 인구(청원 15만4000명, 포항 51만9000명)를 감안하면 사실상 전국 최고다. 군립미술관과 2곳의 사립미술관이 있고, 박물관도 5곳이나 된다. 현재 공공도서관이 4개인데, 올해 도서관 2개 미술관 1개를 더 짓는다. 오영택 청원군청 문화체육과장은 “군 단위치고는 재정자립도(33.2%)가 높고 청주시를 감싸고 있는 데다, 과학도시 오송·오창이 있어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문화 인프라 1위 군’ 설명으론 부족하다. 결국 군민의 높은 문화수준과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력 덕분 아닐까 한다. 귀촌 행렬 유치에 열심인 전국 기초단체들이여, 청원군을 유심히 들여다보시라.
- 중앙일보 201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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