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것을 가끔 탁구 경기에 비유합니다. 탁구공이 넘어올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공이 넘어갈 때 상대방 또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창의적 과정이거든요.”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 전문가 게르하르트 슈타이들(63·사진)은 10일 출판사업은 탁구와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슈타이들과 책만들기’ 전시회(4월11일~10월6일·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를 열기 위해 미국 유명 팝아티스트 짐 다인과 함께 한국을 찾은 그는 “문학인 화가 사진작가 등 아티스트들과 예술혼을 공유하며 책을 예술의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1950년 독일 괴팅겐에서 태어난 슈타이들은 17세부터 배운 인쇄기술을 바탕으로 1968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출판회사 ‘슈타이들’을 설립했다. 1972년 첫 책을 발간한 그는 1980~1990년대에 문학 사진 예술 서적으로 출판 영역을 넓히며 아트북 제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도 그는 편집 디자인 마케팅 등 책 제작의 모든 공정에 직접 관여해 해마다 400여권의 책을 만들고 있다.
43년간 출판업에만 매달린 슈타이들은 “책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다소 로맨틱해 보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된 것이다.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인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을 비롯해 ‘팝아트의 거장’ 짐 다인과 에드 루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 샤넬의 책임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 사진작가 코토 볼로포 등 유명인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아트북을 만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단순한 예술서적을 넘어 책이 예술 작품으로서 지니는 가치를 재조명하고,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종이로 전해 새로운 감동을 느껴보자는 겁니다.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캐나다 건축 사진작가 로버트 폴리도리의 말을 좋아합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출판업에 뛰어든 그는 “책은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며 “종이책의 신르네상스가 곧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젊은 시절 책에 대한 확신이 컸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책은 꿈많은 아이와 같은 존재며,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죠. 좋은 서재는 집안의 귀한 보물이 될 겁니다.”
유명 아티스트과와 협업을 통해 책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 “화가 소설가 사진작가들의 창작 과정에 호기심이 많았다”며 “지금도 학생이란 생각으로 그들의 색다른 아이디어를 채집한다”고 말했다.
출판도 비즈니스인 만큼 이익이 중요하다는 그는 “인쇄 퀄리티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출판 인쇄 전문가 50명과 함께 일한다”며 “회사에서는 특출한 솔로 뮤지션들이 모여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스스로를 매우 잘 훈련받은 출판 인력이라고 강조한 그는 “세계적인 출판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우물을 끝없이 파는판 열정 덕분”이라고 귀띔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국 패션사진작가 볼로포가 찍은 슈타이들과 아티스트들의 협업 사진, 다양한 타이포 그라피, 짐 다인의 오리지널 판화 등을 만날 수 있다. (02)720-066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 한국경제 201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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