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10-22 12:36
[기록이 없는 나라]<5> 정부부처 회의록접근 원천봉쇄
세계일보 2004년 6월 4일

<세계일보 참여연대 공동기획>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 박병진, 주춘렬, 김형구, 이우승기자(specials@segye.com)


[기록이 없는 나라]정부부처 회의록접근 원천봉쇄

정부 주요정책 밀실 결정 여전
70개중 15곳은 작성조차 안해

국가 정책결정의 근간인 정부 부처의 주요 회의 중 절반가량은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거나 아예 기록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나머지 주요 회의들도 대부분 정보공개요구에 선별 대응, 사실상 회의록 공개를 꺼렸고 인터넷에 공개되는 일반회의는 8곳에 불과했다. 속기록 작성이 의무화된 12개 회의 역시 의견요지만 간단히 적는 편법이 동원되거나 아예 회의록 자체를 남기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세계일보가 27개 중앙부처와 위원회의 70개 회의를 대상으로 회의록 기록·관리실태를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이번 조사 결과,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회의는 전체의 30%인 21개에 이르렀고, 15개(21.4%)의 회의·위원회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고 있었다. 정부회의 두 곳 중 하나는 회의내용 접근이 원천봉쇄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국가이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회의명조차 밝히지 않았다. 심각한 것은 공개불가 회의 대부분이 공개시한을 두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비공개로 운영되는 가운데 일부 회의록의 경우 관련문서와 함께 보존기한만 채운 뒤 무단 폐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머지 회의록도 부실하게 작성되거나 일반공개에 소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공개청구때 사안에 따라 공개한다는 회의는 37.7%인 26개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이들 회의 중 실제 공개가 이뤄진 국무회의와 차관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3개를 빼고는 단 한 건의 공개실적도 없었다. 이는 전체 회의 중 84%인 59곳이 정보공개의 사각지대여서 참여정부 역시 과거의 밀실행정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또 회의록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회의가 6개에 불과했고,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와 재경부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각각 3개월, 1년 후에 일반에 공개하고 있었다. 그나마 일반공개된 회의록들은 대부분 참석자들의 의견을 짧게 요약하고 발언자를 알 수 없었다.

한편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속기록이나 녹음 형식의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한 12개 회의 중 5개는 아예 회의록을 기록하지 않았고 나머지 회의도 발언요지만 간단하게 남기고 있었다. 이들 회의의 주무 부처는 대부분 속기록 지정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5-2>'부실투성이' 정부 회의록

관료 면피용 날림 회의록만 수두룩


정부 회의록이 엉망진창이다.
정부 부처 대부분은 회의록 작성을 기피한 채 짤막한 보고서로 대체하는 편법을 쓰는가 하면 아예 회의록 자체를 기록하지 않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또 부처마다 공개잣대가 들쑥날쑥한 가운데 제멋대로 회의록을 무단 폐기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관료의 행정편의주의와 기록기피 탓에 국가정책 결정과정이 ‘기록의 암흑지대’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참여정부가 슬로건으로 내세운 책임·투명행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그들만의 회의록=정부의 기록불감증은 회의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 정부회의 10개 중 3개는 국가안보·안위 등을 명분으로 공개 자체가 원천봉쇄되고 있고 나머지 회의들도 민감한 사안의 경우 비공개되고 있다. 외교통상부와 국방부는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회의이름을 공개하지 않았고, 법무무도 회의록 작성여부조차 알려줄 수 없다고 강변했다.

청와대와 통일부·재정경제부 등 나머지 부처들도 비공개의 근거로 정보공개법 제7조와 9조에 나오는 공개의 예외조항을 지목한다. 국가안보·안위에 관련되는 사안을 비롯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기업경영 지장 우려 ▲의사결정 진행 중일 때에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정부회의록의 비공개 족쇄를 푸는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청와대조차 수석·보좌관회의를 공개 불허하면서도 향후 비공개 회의록의 처리원칙이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공개 회의록을 언제 어떻게 공개할지에 관한 내부규칙이 없고 따라서 회의록 자체가 공개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심각한 것은 정부 부처들이 비공개조항을 멋대로 해석, 엉뚱하게 영구비공개의 수단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비공개 회의록의 경우 대부분 공개시한이 적시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사실상 영구적인 비밀사안으로 봐야 한다”며 “또한 회의록도 3∼10년 등 보존시한만 채우면 곧바로 폐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공개법의 예외조항이 기록폐기에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되면서 ‘그들만의 회의록’이 음지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최근 청와대는 회의록을 차차기 정부가 출범한 뒤 1년이 지난 후 공개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알맹이 없는 회의록=회의록은 공개든 비공개든 부실하게 작성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정책결정의 핵심기구인 국무·차관회의조차 민감한 사안이나 토론내용을 빠트린 회의록이 작성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속기록형식의 회의록이 작성되는 사례는 거의 없고 녹취하더라도 발언요지를 적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회의록 부실은 특기할 만하다. 공자위는 160조원을 웃도는 공적자금의 집행과 관리를 최종 책임지는 곳으로 의사결정에 따라 국민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공자위 김성국 의사총괄과장은 “위원들의 토론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회의록을 1년 후에 공개하며 별도의 녹취도 남기지 않는다”며 “잘못된 결정에 대해서는 위원회 전체가 연대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회의때 누가 무슨 얘기를 했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아예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3개월후 인터넷 공개)·규제개혁위원회 등 나머지 공개회의록도 발언요지만 요약하거나 비실명으로 작성되고 있다.

◆들쑥날쑥한 공개잣대=‘회색지대’의 정부 회의들도 26곳에 이른다. 이들 회의의 경우 정보공개 청구때 사안에 따라 선별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정작 이들 회의의 회의록이 공개된 사례는 국무회의록 등 4곳을 빼곤 전무해 정보공개를 꺼리는 빛이 역력했다. 공개실적만 따진다면 이들 회의 대부분이 비공개회의와 다를 바 없다. 여전히 행정편의주의 구태가 만연돼 있다는 증거다.

반대로 회의 후 인터넷에 바로 띄우는 회의록도 국민경제자문회의 등 6곳에 이른다. 이들 회의록은 그러나 위원장과 위원 등 참석자들의 자기 ‘검열’을 거쳐 공개된 것이어서 현장기록과는 거리가 멀다.

해당 부처의 기록담당자들은 회의록 부실에 대해 “국회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 국회 요구때 행정부처에서 국가안위 등 별다른 사유가 없을 경우 무조건 서류를 제출토록 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논란이 될 만한 회의록 작성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회의록 부실의 주범이 증감법이라는 항변이다.



<5-3>지자체들도 엉망

극소수만 속기록… 대부분 소송·수사 방어용


지방자치단체들은 회의록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광역시·도청 등 지자체들은 대부분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형식적인 겉치례로 작성하고 있다. 속기록 형식으로 작성하는 일부 회의록도 행정의 투명성이나 사료가치라는 잣대가 아니라 행정소송과 검찰 등 사정당국의 수사에 대비한 방어적 수단만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통상 지자체들은 크고 작은 회의가 60∼80개 가량에 이르며 이 중 극소수만 회의록이 작성되고 있다. 예컨대 인천시의 경우 회의록이 작성돼야 할 회의만도 지방의회에 상정되기에 앞서 열리는 조례·규칙심의회와 각종 위원회 등 모두 70여개에 이른다.

인천시 관계자는 “회의록이 속기록 형식으로 작성되는 회의는 인사위원회와 도시계획조정위원회 등 몇몇에 불과하다”며 “이들 회의의 경우 개인의 신분이나 도시개발 등 민감한 사안으로 행정소송이나 민형사소송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작성, 보관해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록이 행정 ‘면피’용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나머지 일반적인 위원회와 회의도 회의록이 부실하게 작성되거나 회의록을 뺀 심의의결서만 작성하고 있다.

울산시와 강원도의 기록물담당자들도 “(지방에서 작성하는) 회의록 대부분이 형식적이다”며 “예컨대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는 게 아니라 ‘(상정안건에 대해) 이의 있느냐’라는 질의에 ‘있다’ ‘없다’라고 짤막하게 응답하는 형식으로 작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록의 사후관리도 엉망이다. 회의록도 일반문서와 마찬가지로 해당 주무과의 캐비닛에 수북이 쌓여 장기 방치된 채 무단폐기되고 있다. 원래 회의록도 해당과에서 2년 보관한 뒤 기록물전담과로 옮겨 7년간 보존하는 게 원칙이다. 전북과 충남의 기록물담당자는 “회의록의 경우 대부분 해당 주무과에서 ‘비공개’로 처리한 뒤 보관하고 있다”며 “해당과에서는 1∼5년 등 보존기한만 채운 뒤 대부분 폐기하고 있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무원들이 자신의 보신에 필요한 회의록만 챙긴 뒤 법에서 명시한 전문가의 의견도 청취하지 않은 채 과거 관행대로 회의록을 파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본지의 설문조사에서도 지방회의록의 난맥상이 확인된 바 있다. 회의록을 공개한다는 응답은 한 곳도 없었고 대구·경남·전남·제주 등 4곳은 아예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충남도와 경북도는 ‘모르겠다’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지자체에 따라 회의록 작성이 들쑥날쑥이고 원칙도 없다는 얘기다.

주요 작성 회의록으로는 인사위원회(경기·전북·충북)와 도시계획위원회(서울·강원·울산)가 주류를 이뤘고 ▲시정조정위원회(부산·대전) ▲조례·규칙심의회(대전·인천) ▲행정심판위원회(경기) ▲수도행정자문위원회(서울) ▲문예진흥위원회(광주) 등도 꼽혔다.


<5-4>누가 무슨 의견 냈는지… 알길 막막

정부회의록 천태만상

국가회의록은 작성 부처나 사안에 따라 천태만상이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취재과정에서 국무·차관회의 등 회의록 20여개와 일제 강점기의 도경찰청 회의록을 입수했다. 이들 회의록 중에는 회의흐름을 제대로 알 수 없거나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알기 힘든 사례가 많았다. 회의록만 부실한 것인지 아니면 회의 자체가 실제 그렇게 진행됐는지 알 수는 없다. 다음은 회의록에 나온 내용만으로 재구성해 본 현재의 중요 국가회의와 일제하 도경찰청장회의 풍속도다.

#1. 고건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독백

대통령 탄핵사태로 정국이 어수선했던 지난 4월 27일 정부중앙청사 국무회의실에서 국무회의가 열렸다.

고 전 권한대행은 먼저 의안심의 때 지방공무원수당규정 개정안 등 상정안건 7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물론 행정자치부 등 해당 부처에서 상정안을 설명했지만 나머지 국무위원들은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았다.

이어 통일부·건설교통부 등 4개 부처에서 북한 용천역 열차폭발사고와 국내철도의 위험수송현황 등을 구두로 보고했다. 고 전 권한대행은 이들 보고에 대북지원 때 긴급의약품의 항공 수송을 검토하고 질산암모늄의 국내 유통실태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이때도 나머지 국무위원들은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이날 국무회의는 모두 11건의 의안·보고안건이 있었지만 오전 10시에 시작된지 불과 1시간5분 만에 끝났다.

앞서 4월 16일 열린 차관회의는 한술 더 떴다.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은 오후 3시부터 차관회의를 연 뒤 불과 45분 만에 14건의 상정안건을 단숨에 처리했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19명의 차관들은 국무위원들처럼 침묵으로 일관했다. 단지 “국정 로드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한 실장의 지시만 있을 따름이었다.

#2. 경제부총리의 열변과 한국은행 총재의 침묵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 하루 후인 3월 13일 오전 과천청사에서 15개부처의 장차관을 불러모아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부총리는 이날 “경제부처장관들이 합심해 이 난국을 대처하자”며 “참여정부의 각종 로드맵이 흔들리지 않느냐는 위기감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역설’(회의록 표현)했다.

각 부처 장관들은 소관 현안사항과 조치계획(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만 묵묵히 보고했을 뿐 이 부총리의 열변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월 8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통화정책방향을 상정한 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일부’위원과 ‘다른’ 일부위원, ‘또 다른’ 일부위원들이 올해 경제전망과 국제유가 등 물가불안 문제, 반도체경기와 실업·신용불량·신용카드부실 등 경제현안에 관한 의견을 나눴을 뿐이다.

#3. ‘얼굴 없는’ 회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003년 1월 23일 회의를 열어 당시 최대 금융현안이었던 조흥은행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신한금융지주를 선정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매각시기에 대해 “2∼3년 후 매각하자” “조기매각이 좋다”는 의견이 엇갈렸고 가격도 “주당 6000원이라면 좋다”는 찬성과 “가치평가를 3자에게 맡기자”라는 신중론도 나왔다.

그러나 누가 반대·찬성의견을 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는지 알 길이 없다. 단지 당시 공동위원장이었던 전윤철 전 경제부총리와 전철환 전 한은총재, 6명의 위원이 참석했다는 ‘썰렁한’ 정보만 남아 있다. ‘100년 은행’인 조흥은행은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뒤 이 회의를 거쳐 매각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다.

이로부터 1년 뒤인 올해 1월 14일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취임 10일 만에 첫번째 인적자원개발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산업자원부 등 3개 부처장관과 재경부 등 10개 부처 차관이 참석했고 이공계대학연구소 활성화대책 등 모두 6건의 심의·보고안건이 논의됐다.

이어 안건논의 때 “기업이 대학의 기자재를 공유하자” “교원정원을 늘리자”(청년층 직업진로지도 활성화방안) “지방대학에서 프로젝트 선정할 때 지자체와 협조해 지역발전에 필요한 분야를 선정하자”(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계획안) 등의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어떤 장·차관이 의견을 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4.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탄압토론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회의록은 우리 정부 회의록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인 1935년 총독부가 만든 800쪽 분량의 도 경찰부장(현 지방경찰청장) 회의서류에는 그 해 4월 22일부터 사흘간 열린 회의의 전모가 조목조목 적혀 있다.

총독과 검사장(현재 검찰총장)·경무국장(경찰청장)의 훈시와 지시·주의사항뿐 아니라 회의 전 각도에서 보고한 ‘요시찰인명부 배포’, ‘요시찰인 사진카드의 신규제작 배포’, ‘풍기단속’, ‘마약퇴치’ 등 총 242건의 의견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또 회의록에는 항일운동 탄압방안이 많았다. 예컨대 “호남교통의 요충지인 이리의 경우 요시찰인이 있을 것인데 요시찰인명부가 없어 검거에 불편하니 명부를 배포해 달라”(전라북도 경찰부장)는 식의 건의가 나오기도 했다.

국가기록원 김재순 연구관은 “항일운동탄압 이외에도 당시 전체 사회상이 경찰 시각에서 정리돼 있어 식민통치사의 1차사료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5-5>"국정 논의내용 문서화 필수…국민 참여기회 대폭 늘려야”

盧대통령, 회의록 공개 公約 지키길-명지대 김익한 교수

“모든 주요한 국가정책은 회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그런 만큼 회의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정책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명지대 기록관리학과 김익한(사진) 교수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문화는 책임행정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장을 지낸 그는 ‘회의록 작성 및 공개원칙’은 국정운영에 관한 국민참여의 범위를 넓히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건설현장에서는 설계 실패의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합니다. 우리 행정부도 그동안 마찬가지였습니다. 실패하면 문책당하기 때문에 정책결정 기록이나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던 겁니다. TV를 보면 국무위원들이 뭔가 열심히 메모는 하지만, 실속있는 기록물은 남은 게 없습니다. 결과물만 요지 중심으로 간단히 기록할 뿐이죠. 국정 주요과제가 논의되는 국무회의는 기록과 녹음으로 생생히 남겨야 합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을 좋은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고 말했다. 사관이 주요 현안에 대한 회의내용은 물론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기록한 것은 높이 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1976년 ‘Government in the Sunshine Act’(open meeting’s law·회의공개법)를 제정, 회의 자체를 공개하는 것은 물론 전자녹음을 통해 의사록을 원칙적으로 즉각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회의록 공개 예외조항과도 관련, ‘공개여부를 즉시 판단하기 어렵거나 국가안보상 비밀로 판단한 경우 등에 과반수의 찬성을 거쳐 비공개한다’고 구체화했을 정도라는 것.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주요 회의의 회의록을 반드시 남기고, 독립적 기관을 설치해 회의록의 공개 여부를 평가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행정의 투명성을 지향한다는 차원에서 그런 거죠. 하지만 현 정부에서도 크게 나아진 건 없는 것 같아 실망스럽습니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회의록 작성 및 공개 운동’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기록물관리법은 원래 장·차관 등 주요인사의 업무협의 대화록까지 남기도록 강제했으나 행정부처 대부분의 거센 반발로 회의록 작성 의무 규정이 대폭 손질됐던 전례가 있다며, “공무원은 기록의 주인이 공무원 자신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인식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