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세종의 업적과 한글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인 한글은 모든 문자로부터 독립적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독창적이다. 그러나 이런 한글의 탄생 역시 다른 문자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겪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모든 지적 성취는 또 다른 지식을 활용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적재산권의 보호와 지식의 공유가 적정한 균형점을 찾을 때 그 사회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가 원저작자에게서 양도받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 등 12개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을 공공저작권 신탁관리기관인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에 신탁했다. 공공저작물이 민간에 활용될 경우 그 가치가 10조 원에 이른다고 하니 부가가치 창출의 효과 면에서 이번 서울시의 첫 신탁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실제 공공저작물의 활용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공공저작물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처리가 선행돼야 하지만 저작물 관리를 위한 기준이나 절차를 가진 기관은 4.7%에 불과할 정도로 공공저작물의 관리 기반이 취약하다.
공공저작물의 활용성 제고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6월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을 공공저작권 신탁관리기관으로 지정했다. 민간 분야에서는 음악, 어문, 방송 등 저작물의 유형별로 저작권 신탁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공공저작물을 대상으로 하는 신탁관리기관의 지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작권 처리와 저작물 관리에 애를 먹던 공공기관은 저작권 신탁을 통해 전문적이고 효과적으로 저작물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저작권 이용 허락에 따른 수익을 양질의 콘텐츠 개발에 재투자하거나 기부금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환원할 수 있다. 이용자들도 그동안 공공저작물을 이용하기 위해 개별 기관에 허락을 받아야 했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생산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윈윈 전략인 셈이다.
신탁된 공공저작물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상업적 목적의 이용일 경우 공공저작권 이용료 징수 규정에 따라 유상으로 제공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민이 자유롭게 공공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범위를 축소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용료를 받는 경우에도 수수료 수준으로 최소화하거나 이번 서울시의 사례처럼 기부금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공공저작물의 활용에 대한 노력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하지만 그 행보는 빠르고 민첩하다. 공공저작물의 합리적 관리 방안을 위해 저작권법과 국유재산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고, 공공저작물 자유 이용 라이선스인 KOGL(Korean Open Government License)이 개발돼 시범 적용 단계에 있다.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도 더 많은 공공저작물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공공저작권 온라인 유통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이용자 편의를 위한 노력을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 공공저작물의 개방과 활용이 활성화돼 대한민국의 문화적 토양에 풍부한 거름이 되길 기대해 본다.
한응수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장
-동아일보 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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