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1-08 11:20
미술아카이브와 아키비스트가 필요하다!

10월 13일,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학술세미나 둘째날은 ‘새로운 개입을 위하여’란 제하의 제3부 세미나가 있었다. 구체적인 주제는 ‘미술사와 미술아카이브’였다. 필자는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발제의 토론자로 참석했다. 일반 관람객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첫 발제부터 마지막 발제까지 발제문들의 문제의식이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2, 3년 후면 전국의 거의 모든 광역자치단체에 공립미술관들이 오픈하게 될 것이다. 공립미술관들의 개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중 지역미술사를 위한 미술관의 역할은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향방이 큰 틀에서 통사론적 접근을 시도할 때 지역미술사는 소외되거나 주변부에 놓인다. 그것을 나무랄 수도 없고, 모든 미술사를 통사로 정리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지역미술사는 지역의 역사로써 다시 정리되어야만 미술사가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런데 지역미술사는 고사하고 통합적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구상하기 위한 다양한 자료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미술아카이브란 용어조차 21세기에 와서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되면서 이해되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 정작 미술사 연구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카이브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그동안 작품 외적 자료들에 대해서는 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작품의 도상학적이고 기호학적인 분석이나 작가의도, 작가철학에 기대어 분석하는 방식에 몰두하다 보니 그 외의 자료들과 비교 분석하는 아카이브 분석은 취약하기 짝이 없었다. 더군다나 작가철학이나 의도도 작가의 말을 통해서 인식할 뿐 다른 자료들을 수집하거나 발굴하는 것은 게을렀다고 밖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미술사의 풍요를 위한 미술아카이브
미술아카이브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박물관처럼 전반적인 아카이브 구축도 필요하겠고, 연구자의 주제에 따른 주제별, 시대별, 장르별, 매체별 아카이브도 시작될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카이브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방법론과 보존에 대해서도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미술 아카이브의 구축 및 운영 사례 연구 : 게티미술연구소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는데, 게티미술연구소의 운영 사례는 우리가 우리를 비교하면서 검증하고 도입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 생각되었다. 전문 아카이비스트들의 의한 자료의 수집, 보존, 목록화, 연구 활동 등의 노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

미술자료를 가지고만 있다고 해서 아카이브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연구자들은 대부분 엄청난 자료들을 수집만 하고 정리를 하지 못해서 무슨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살아오면서 관심 갖는 분야의 자료를 많이 모았지만, 뭉치로 쌓여 있을 뿐 수년이 지나도 꺼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비평을 위해 모아둔 자료들도 그렇다. 짧은 단평 수준의 리뷰를 쓰기 위해 자료를 소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니 더 깊게 살필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큐레이터든 미술평론가든 또는 미술사가든 자료의 공유를 위한 아카이브 기증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작은 미술아카이브 연구소들도 더 많이 생겨야 한다. 지역과 지역을 네트워크하는 아카이브 연구자들이 나타나야 한다. 곳곳에 미술아카이브 공간들이 생겨나면 자연스럽게 연구자들의 연구도 깊어질 것이다. 다양해질 것이다. 한국미술계가 더 풍요로워지기 위한 첫 단추가 바로 미술아카이브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이유다.

필자는 최근 우리 미술아카이브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연구팀 ‘앗’을 발족시켰다. 195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전위적, 실험적, 개념적 자료는 물론, 행동주의 실천미학을 전개한 자료들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또한, 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을 연구 집필하고 있다. 이러한 작은 노력도 작은 실개천을 이루는 미술아카이브의 방향성이라 생각한다


- 서울아트가이드 2012.11월호 Vol.131 (김종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