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1-25 13:47
바이오미스트, `문화재 소독·보존` 각국서 러브콜
1998년 초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는 고민에 빠졌다.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를 대표하는 기록물 보존을 일본에서 수입한 소독장비와 약제에 맡겨야 하는 현실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 보존소는 화학 분야 국내 대기업 3곳과 당시 항균ㆍ살충제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이오미스트(대표 최영신ㆍ55)에 기록물ㆍ문화재 소독장비ㆍ약제의 국산화 사업을 제안했다.

대기업 3곳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최영신 바이오미스트 대표는 "보존소 제안은 어떤 기업이 봐도 막대한 연구개발(R&D)비를 쏟아붓는 반면 전체 시장 규모가 20억~30억원에 불과해 돈 벌기 어려운 사업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다른 임원을 설득해 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그때 머릿속에는 `돈`보다는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기록물을 우리가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곧바로 개발에 나섰다. 다행스럽게도 개발에 충남대와 한국기계연구원이 합류했다. 바이오미스트는 균을 잡는 소독에 대해선 자신감이 있었다. 최 대표는 "이미 항균ㆍ살충 사업에선 꾸준한 R&D를 통해 일정 수준의 기술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개발 직전엔 고급 매장의 악취를 제거하고 친환경 향수를 이용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조성하는 향기마케팅 `아이센트` 사업도 하고 있어 성공적 개발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3년가량 R&D를 통해 2002년 첫 작품이 나왔다. 스프레이 방식의 소독장비였다. 하지만 치명적(?)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최 대표는 "소독약을 스프레이 방식으로 뿌리는 장비여서 기록물에 약제가 묻어 젖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작정 기술연구소장 등 연구원들을 데리고 유럽ㆍ미국 등 선진국으로 나갔다. 최 대표는 "스프레이 방식의 단점을 잡기 위해 1년간 200일 이상을 외국에서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곤 5년간 `기화방식`의 소독장비ㆍ약제 개발에 올인했다. 그리고 2007년 100% 완벽한 기화방식의 소독장비인 `바이오마스터` 개발에 성공했다. 최 대표는 "플라스틱 계열의 작은 알갱이를 이용해 약제를 완전 흡수하게 했다"면서 "소독장비의 팬으로 흡수된 약제를 기체로 모두 날려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기화방식은 지식경제부로부터 신기술(NET) 인증까지 받았다.

약제도 특별했다. 그동안 소독약으론 메틸브로마이드, 에틸렌 옥사이드 등이 사용됐다. 오존층을 파괴하고 암을 유발하는 유독성 화학물질이었다. 최 대표는 "바이오마스터는 화학물질이 아닌 향을 갖고 있는 기능성 식물 오일을 이용했고 질소를 이용해 소독하기 때문에 인체나 환경에 무해하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소독장비와 약제는 바이오마스터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엔 해외에서 잇달아 러브콜을 받고 있다. 2010년엔 말레이시아 국립공과대학인 UiTM 도서관에 바이오마스터를 처음 수출했다.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시장도 뚫었다. 최근 일본 최대 도서ㆍ서적ㆍ서류 등 기록물 보관 전문기업인 `동경서고`와 도서정리 전문사회복지법인인 사이타마복지회에 바이오마스터가 깔렸다. 최 대표는 "일본에 바이오미스트를 수출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 매일경제 2013.01.25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60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