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름다운 책'이 한 권 놓여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역설일까? 아름다우면서도 아름답지가 않다. 책의 표지에는 라 써있다. 독일어 'Justizvollzugsanstalt'(사법집행기관)를 줄인 말로, 교도소라는 뜻이다. 정의를 실행하는 공간이 결국 교도소라니, 제목부터 그 아이러니를 곱씹게 한다. 표지 커버를 벗겨내어 보면 아무 글자도 장치도 없는 두꺼운 회색 갱지가 드러난다. 교도소 외벽, 거친 시멘트의 차가운 촉감이 그렇게 책을 둘러싼다. 본문을 넘겨본다. 척박한 교도소의 황량한 풍경만 펼쳐진다. 텍스트는 거의 배제되어 있다.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폰트를 적용한 극도로 절제된 타이포그래피에서 디자이너의 만만찮은 내공을 짐작할 뿐이다. '아름다운 책'이란 무엇인지, 도발하며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 있다. 이 책 <교도소>가 그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다.
6월에 있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아름다운 책'이라는 특별전이 열린다고 한다. 지난 주에 대한출판문화협회로부터 이 특별전을 위해 국내서를 한 권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상념은 흘러, 독일 서적예술재단이 주관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공모전에 자연스럽게 가 닿았다. 종합예술로서의 '책'이 '아름답다'는 개념에 대해서는, 그들의 완숙한 서적예술문화의 토양 위에서 암묵적 합의가 형성된 지 오래다. 일단, 여기서만큼은 내용이나 문장이 아름답기보다는 디자인이 잘 된 책을 가리킨다. 그런데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어째 목에 걸린다. 하도 오용되다 보니 풀어 쓰자면, '책의 육체에 적절한 물성과 외관을 부여하는 또 다른 층위의 정신적 행위'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공모전을 심사하는 장소는 라이프치히 국립도서관이다. 역대 수상작들도 모두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도서관장의 특별한 허가 아래, 21세기 첫 10여 년 간의 수상작들을 모두 열람하는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일주일 간 도서관에 나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160여권에 육박하는 책들이 수레에 실려 나와 내 책상 옆에 놓였다. 나는 그 기간 동안 매일 거의 정시 출퇴근을 하다시피 했다. 10여 년 세월이 쌓인 자료가 확보되자, 서적디자인의 세계적 흐름이 읽혔다. 더불어 내가 몸담았던 라이프치히의 서적 문화에 대해서도 당시까지는 단편적인 인상만을 가지고 있다가, 세계의 큰 지형 속에서 어떤 맥락에 위치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교도소>는 라이프치히의 고유한 출판 생태계 속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사진가들과 서적디자이너들이 함께 기획하고 제작했다. 독일에는 교도소가 26개 정도 있다. 그들은 모든 교도소를 찾아가 촬영을 했다. 이 사진에 사람의 모습이란 기척도 보이지 않는다. 교도소에서도 인간애가 움튼다는 식의 휴머니즘적 메시지도, 인권유린의 현장을 고발하려는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살풍경한 교도소 건물을 담담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 내부를 인간적인 눈길로 보듬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감시하는 폐쇄회로(CC)TV처럼 기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책을 만든 이들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국가권력의 구조를 다룬,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감시를 통한 사회정의가 정말로 이루어지는지, 이를 역으로 감시하는 판옵티콘의 눈으로 교도소를 바라보았다.
인간적 해석을 가미하지도, 따뜻한 감성에 호소하지도, 미화되지도 포장되지도 않은 교도소가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교도소는 다만 그렇게 생겼을 뿐이고, 그것이 교도소의 진실이다. 그들은 해석을 배제한 시선을 투명하게 전달함으로써, 진실을 보이는 데까지만 형상화했다. 조형물로서 책의 올바름이란, 디자이너 자신이 인식한 세계를 일상의 시각언어 그대로 전하는 태도 자체에 있을 수 있다. 회화나 문학에 비교하면 사실주의에 가깝겠다. 그러니 이 책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아름답다. 세계를 대하고 책을 대하는 태도에 깃든 '정당한 성찰'이 아름답다. <교도소>는 이듬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한국일보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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