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2.0 ⑬ 종림 스님
누구든 검색하며 공부할 수 있어
지금과 전혀 다른 불교 나올지도 …
고려대장경 DB화 작업을 이끌어 온 종림 스님. “현재 한국 불교는 불교 본연의 모습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 근본적으로 바꿔보자는 생각에서 경전 DB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부처님 경전을 읽는 간경(看經)은 예로부터 대표적인 불교 수행법의 하나다. 경전을 정확하게 알려면 몸부터 단정하게 하라고 했다. 하물며 경전의 일점일획을 또박또박 옮겨 적는 사경(寫經)은 오죽했을까.
조계종 종림(69) 스님은 ‘현대판 사경’의 대표자다. 경전을 옮기는 과정이 붓(사경)이나 칼(판각)에서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이다. 고려대장경연구소를 21년째 이끌고 있는 스님은 팔만대장경 등 한국의 문화유산을 DB(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에 매달려 왔다. 그 공로로 최근 여성 불자 모임인 불이회(不二會)에서 주는 2013 불이상 실천 분야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7월 5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다.
25일 스님을 찾았다. 고려대장경연구소는 서울 안암동의 한 주택가 끝자락에 웅크리고 있었다. 스님에게 사경이 수행방편이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님은 IT(정보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불교 발전에 대한 기대가 컸다. 스님이 추구하는 종교적 영성은 ‘사이버 경전’의 어느 파일 안에 있을 듯싶었다.
-사무실이 무척 열악한 것 같다.
“12년 전 김포로 이사간 중앙승가대에서 비구니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우리도 세 들어 있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 어설프게 돌아가는 에어컨은 있다. 원하면 틀어 주겠다.”
스님은 한 시간 남짓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웠다. 얼마나 태우시냐고 물었더니 “하루 2, 3개”라고 답했다. 두 갑에서 세 갑 사이란 뜻이다. 술은 주종을 가리지 않는다. 당뇨 때문에 현재 끊고 있을 뿐이다. “작은 계율에 얽매이기보다 불교의 핵심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요즘 하시는 일은.
“속장경(續藏經) DB 작업이다. 전체 1000여 부, 4700여 권 중 3분의 1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 일본에 있어서 소장자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그간 연구소가 해온 일은 방대하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알려진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경판 8만1258매를 DB화 했다. 1996년까지 꼬박 3년, 5200만 자를 입력했다. 다음으로 한 일이 ‘재조’보다 200년 이상 빨리 만들어진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DB화다. 6년 걸려 2009년에 끝냈다.
한데 DB로 만든 인쇄본 2000여 권 중 1800여 권이 일본 남선사에 있었다. 이를 활용했다. 문제는 그 다음. 스님은 “한국에 귀한 자료를 공개했다고 욕 먹은 일본 불교계가 지금 DB화 중인 속장경 경전을 잘 내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속장경은 대장경에 대한 한·중 선사들의 주석서를 모은 것이다. 이게 마무리돼야 ‘고려대장경 3부작’ DB가 완성된다.
-효과가 의심스럽다. DB 경전을 볼 사람은 많나.
“당장 누가 보겠나. 소수의 연구자만 보겠지. 그나마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연구자가 너무 부족하다.”
-그럼 DB화를 왜 하는 건가.
“앞으로 사이버 경전에 정교한 인공지능 기능을 곁들여 검색 기능을 강화하면 사람들이 이를 통해 각자 자기 식의 불교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연기(緣起)’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지역별·시대별 연기의 의미 변천사가 다 나오는 거다. 물론 경전의 근거 안에서. 불교 발달의 계통도를 보여준다고 할까. 사람 숫자만큼 많은 불교들은 서로 경쟁할 거다. 그러다 보면 지금 현실과는 다른 정말 새로운 불교가 나올 수 있겠지.”
-스님에게 경전DB화의 의미는.
“나는 세상에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다. 어쩌다 세상에 떨어진 거다. 힘 닿는 대로 세상의 빈 구석을 조금이라도 채우면 밥값 하는 거다. 그런 사람이 영웅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 중앙일보 201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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