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형의 '아카이브' 이야기(4)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미셀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식과 권력은 한 몸'이다.
문자 이전의 시대에는 경험이 많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권력 그 자체였다. 그 후 문자가 생기고 정보를 저장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정보를 보관하는 도서관 같은 자료 저장소를 소유한 사람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고 인터넷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해 지면서 그 지식 권력은 분산되어 버렸다. 누구든지 원하는 정보를 검색창에 입력만 하면 정보는 무한히 검색된다. 거미줄 같이 하이퍼링크 되어 있는 그 무한한 정보들은 지식의 공유와 지식의 평등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검색창에 뉴스, 주식, 날씨, 교통, 쇼핑, 스포츠 등과 같은 알고 싶거나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 검색어를 입력한다. 그러면 검색엔진은 정말 놀랍게도 많은 정보들을 쏟아낸다.
물론 그 정보들이 모두 유용한 정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대략 ①자료(Data) ②정보(Information) ③지식(Knowledge)과 같은 3단계 정도의 수준으로 나뉘어지는 정보들이다.
자료(Data)는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시 자료이고, 정보(Information)는 자료(Data)를 가공하여 얻어진 고급 정보이며, 지식(Knowledge)은 정보(Information)들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만들어낸 최고급 정보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필자는 전시 기획을 위해 검색창에 작가의 이름을 입력해 검색하는 경우가 많다.
기대하는 정보 수준은 작가의 프로필, 전시경력, 평론, 작품사진, 작가노트, 인터뷰와 같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정보들이다.
작가에 따라 검색되는 정보의 양과 질이 다르긴 하지만 오랜 작가경력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거의 없는 작가들이 대부분이거나 검색되는 작가의 경우에도 체계적인 정보 보다는 가공되지 않은 단편적인 자료(Data) 수준의 정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운좋게도 작가의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으며, 연결되는 홈페이지의 경우에도 홈페이지가 구축됨과 동시에 방치되어 있거나 최근 자료가 업데이트 되지 않아 폐허가 된 집을 들러보는 꼴이 되고 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색된 자료(Data) 수준의 정보들을 원하는 수준의 정보(Information 또는 Knowledge)로 가공하기 위해서 많은 손품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선행 되어야 할 과제가 페이퍼 자료의 디지털 전환과 전환된 정보를 저장할 디지털 아트 아카이브 시스템(DAAS)의 구축이다.
작가의 서재나 책상 어딘가에 먼지를 흠뻑 쓰고 처박혀 있을 과거 전시의 두꺼운 팸플릿들은 작가의 열정과 창작혼이 만들어낸 전시의 결정체임과 동시에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작가와 전시 정보가 공유되지 못하는 미술계의 이러한 관행은 오래 되었으나 아날로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디지털 시대가 되어서도 이러한 관행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페이퍼 자료의 디지털 전환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 작가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 아날로그 시대의 관행이 계속 되풀이 되어 인터넷을 통해 자료가 공유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작가와 문화유산을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또 향후 정보 복원을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일반인들도 문화·예술에 관심이 높아졌다. 이제 문화 수준이 국력을 가늠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술과 대중문화가 아직은 거리를 두고 있으나 조만간 미술과 대중문화가 긴밀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 시대를 더욱 앞당기기 위해서는 미술인들과 소수의 애호가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모든 정보는 디지털로 전환되거나 모아져서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고 싶은 대중 모두에게 공유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150년전 윌리엄 모리스가 '민중을 위한 예술'을 부르짖으며 꿈꾸었던 세상이 비로소 디지털 시대에 실현될지도 모를 일이다.
-중도일보 2010.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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