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형의 '아카이브' 이야기 (7)
2001년 HD화질의 디지털TV의 등장은 하나의 커다란 경이로움이었다. 이전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선명한 고화질과 5.1돌비시스템의 지원은 기존의 TV와는 차원이 달랐다. 기존의 TV가 영상 송출의 기본적인 기능만 수행하는 바보상자였다면 디지털TV는 하이앤드 극장 시스템을 능가하는 고화질 영상과 최상의 입체사운드, 쌍방향 통신을 지원하는 신개념 영상통신 기기로 자리매김 하면서 새로운 디지털 문화가 시작됨을 선언하였다.
그렇게 출현한 디지털TV의 기술은 10여 년 동안 프로젝션, PDP, LCD, LED, 3D로 이어지는 디스플레이 기술혁명을 이루며 디지털산업의 기수가 되었다.
그 후로 디스플레이의 발전은 우리의 생활 방식과 문화에 커다란 변화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시각예술 분야와의 연관성은 더욱 커서 사이버 갤러리와 같은 전시 형태의 출현과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 같은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를 촉발 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전시를 준비하거나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할 때 제일 중요한 자료는 전시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 Raisonne)이다. 전시 카탈로그에는 전시일정, 전시장소, 작가 프로필, 전시작품, 평론, 작가노트와 같은 전시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들이 수록되므로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제작한다.
페이퍼 형태의 카탈로그를 제작할 경우 적게는 수십만원부터 많게는 수백에서 수천만원까지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페이퍼 형태가 아닌 디지털로 제작할 경우 1/5 정도의 비용만으로도 멀티미디어까지 지원되는 효율적인 디지털 카탈로그의 제작이 가능하고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과 홍보에 훨씬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비용과 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전시 카탈로그일지라도 카탈로그는 전시를 위한 보조 자료일 뿐이다. 그렇다면 고비용의 페이퍼 카탈로그의 제작은 지양되어야 하며 디지털시대에는 디지털시대에 맞는 형태의 카탈로그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자명하다. 저비용의 디지털로 제작된 디지털 카탈로그는 e메일이나 휴대용 단말기로 전송되고 곧바로 아카이브 시스템에 저장 할 수 있다.
아카이브 시스템에 저장된 전시 자료는 필요하면 언제든 검색과 워터마킹도 기능하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전시 카탈로그 앞에서 자료를 찾다가 결국 시간만 허비하고 마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디지털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혜택을 돌려준다. 게다가 공유의 미덕까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미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던 이상적인 위키피디아 방식의 DAAS의 구축을 실현했다 하더라도 디지털 카탈로그로의 전환 없이는 자료 축적은 고비용을 지불해야 하거나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페이퍼 자료의 디지털 전환은 상당히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치게 되고 많은 비용과 시간이 요구된다. 작품 사진들은 스캐너를 통해 스캔 하거나 고해상도 카메라로 촬영해야 하며 작가노트, 프로필, 평론과 같은 텍스트는 키보드를 통해 입력하거나 OCR(문자인식기술)을 통해 디지털화 되어야 한다.
또 아카이브에 저장될 때 중요한 키워드는 FTR(Full Text Retrival 텍스트 추출 기능)을 통해 추출되어 색인되어야만 검색에 활용 될 수 있다. 이렇듯 아날로그의 디지털 전환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복잡한 전환과정과 비용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미술 정보의 보고라는 김달진연구소의 수많은 자료들은 어쩌면 자료로써의 가치와 효용성 보다는 문화재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책 사업이었던 조선왕조실록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힘든 과정을 생각해 보더라도 훨씬 방대한 시각예술자료의 디지털 전환은 대충 그 어려움이 예상되고도 남는다.
결국은 디지털 마인드의 인식과 확산, 디지털 아트 아카이브 시스템(DAAS)의 구축, 디지털 아트 문화로의 전환이라는 대전제가 하루라도 빨리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동 중에도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전시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조회하고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기반의 환타스틱 디지털 세상. 그렇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을 적극 수용해야만 하는 그 전환의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황선형 모리스갤러리 관장 (10)
-중도일보 2010.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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