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10-22 12:37
[기록이 없는 나라]<7>국가기록원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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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04년 6월 7일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 박병진, 주춘렬, 김형구, 이우승기자(specials@segye.com)
<7-1>국가기록원 현주소
"국장급 원장이 장관급부처 통제못하죠”
(세계일보-참여연대 공동기획)
“기록 무단파기 등의 책임을 물어 관련 공무원을 처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단 한 번도 벌칙 조항이 적용된 적이 없다는 건 문제죠.” 지난달 19일 세계일보 취재팀이 대전 국가기록원을 찾았을 때 국가기록원 직원들은 국가기록 관리를 책임지는 기록원의 현주소를 이렇게 표현했다. 현재 국가기록원의 ‘장’이 행정자치부 소속 국장급(2급)이라 위상이 높은 다른 부처에다 대고 ‘이래라저래라’하며 기록 관련 업무를 강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선 부처의 기록관리 수준이 ‘걸음마 단계’인데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푸념도 늘어놓았다. 이에 따라 국가기록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독립위원회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위상 낮아 제 역할 못해=국가기록원은 1999년 공공기록물관리법 제정 당시 가칭 ‘국가기록청’이라는 별도의 독립기구 설치를 원했다. 비록 기록물을 한곳에 모아 보존할 수 없더라도 기록 관리기구이니만큼 대상 기관들을 지휘·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은 ‘작은 정부’ 방침 탓에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지난 3월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학계의 거센 요구에 국가기록원장을 차관급으로 높이고 직원 숫자를 배로 늘리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달 국가기록원 기구 개편 작업에서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다만 정부기록보존소에서 국가기록원으로 이름만 바뀌고, 1개과 인원 5명이 느는 수준에 그쳤다. 국가기록원 인력(136명)은 조선시대 춘추관 인력(163명)보다도 적다. 사실 국가기록원장은 국장급이라 장관의 지휘를 받는 다른 부처의 기록관리 실태를 지도·감독하기가 쉽지 않다. 소위 ‘끗발’에서 밀리다보니 각급 기관이나 부처에서 ‘알아서’ 보내주는 자료를 받아 보존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명지대 김익한 교수는 “명목상 주어진 감독권은 허울에 불과하다. 기록원의 위상을 현실화하지 않는 한 공공기록의 온전한 관리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지도·점검도 유명무실=국가기록원은 매년 정기적으로 국가기관을 상대로 기록물 관리에 대한 지도·점검을 하고 있다. 현행 기록물관리법에 따르면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하거나 국외로 방출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2000년 법 시행 이후 공공기록의 무단 폐기와 방치로 처벌받은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다. 기록물 주무부처인 행자부가 보존기간 10년 이상인 기록물을 자체 폐기하지 못하도록 한 기록원의 지침을 어기고 2001년 139건, 2002년에 251건을 임의로 폐기했을 때도 아무런 처벌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을 정도다. 기록원의 지도·점검이 강제력을 갖지 못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가기록원 윤대현 보존과장은 “현재의 지도·점검 수준으로는 일선 부처의 무단 폐기를 비롯한 기록관리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시인했다.
이재명 투명사회팀장은 “머잖아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가기록을 무단 폐기하다가 처벌을 받는 일이 나타나야 기록물 보존이 본 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7-2>공문서 보존 어떻게 하나
해당기관서 가치따져 7가지 분류
일반문서 9년 보관후 기록원 이관
그동안 공공기록은 ‘정부공문서 규정’, ‘사무관리 규정’ 등에 의해 관리돼 왔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은 국가기록을 관리·보존한다는 측면보다는 공문서 유통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과거 주먹구구식 보존에서 일정 체계를 갖고 기록이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공공기록관리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2000년 1월 공포된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에는 중요도에 따라 기록물을 영구보존물과 준영구보존물, 20년, 10년, 5년, 3년, 1년 등 7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록물은 각 기관에서 9년까지 보관이 가능하고, 이후에는 대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돼 보존된다. 기록물이 국가기록원에 입고되면 목록 등록과 일련번호가 매겨져 1차 기록물로 분류된다. 이어 기록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내용 평가 작업을 거치고 기록물 훼손 여부 등 물리적 상태의 점검·평가도 받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종이 기록물은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고, 전자문서는 광디스크로 찍어서 원본과 별도 보존한다. 시청각자료도 디지털작업으로 복제된 뒤 원본과 따로 보존된다.
이와 함께 영구보존되는 기록물들은 정기점검을 받는다. 훼손된 기록물이 발견되면 우선 리스트를 작성해 대상을 지정하고 복원작업에 나선다. 종이기록물 원본이 훼손된 경우 1차로 복원센터에서 수작업으로 치료받는다. 먼저 산성화 때문에 ‘부스러짐’ 현상이 심각하면 탈산(脫酸) 처리하고, 곰팡이 등 기타 오염물질에 의한 훼손은 천연 허브향을 이용해 18시간 이상 소독처리를 한다.
<7-2>올부터 시행되는 '분류기준표'란
711개 행정기관 업무 420만개로 세분
보존기간·장소 명시한 '기록의 족보'
분류기준표는 기록물의 족보(族譜)다.
5년여 진통 끝에 국가기록원이 만든 분류기준표는 711개 국가기관의 업무를 420만2099개로 세분하고 각각의 업무에 그 기능을 붙여 보존 기간과 장소를 명시했다. 또 해마다 각 부처에서 생산되는 기록물 목록의 국가기록원 제출을 의무화했다.
올해부터 이 같은 분류기준표 작성 제도가 시행되면서 일선 부처의 상황은 돌변했다. 한번 작성되면 지울 수도, 없앨 수도 없다.
기록 관리의 혁명이 분류기준표에서 시작된 것이다. 분류기준표는 모든 행정기관의 업무를 부처별로 각각의 단위 업무로 분류하고, 업무 하나하나에 보존사항을 지정한 일종의 ‘행정업무 해부서’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현장에서 공공연히 자행됐던 공문서의 무단 폐기와 누락을 원천봉쇄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분류기준표는 일선 행정기관의 업무가 계속해서 확대되고 변화하듯이 끊임없이 변하는 특성을 지녔다. 단위 업무를 재조정하고 생산된 기록에 대한 계속적인 평가작업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같은 작업을 소홀히 한다면 분류기준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현장에서 새롭게 생산되는 다양하고 ‘생생한’ 기록들을 담아내지 못할 경우 이 역시 있으나마나 한 제도라는 것이다.
고려대 오항녕 교수는 “분류기준표가 기록을 세부적으로 수정하고 평가사항을 끊임없이 재조정해야 하는 것인 만큼 계속 확대해 나가려면 전문 인력의 확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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