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책 정리다. 신간 서점이라면 당연히 깨끗한 책을 팔기에 책을 진열해놓는 것만으로 깔끔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헌책방의 책은 딱히 헐어 있지 않은 책이라고 해도 ‘헌책’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그래서 내가 이 가게에서 일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정리 정돈이다. 신간 서점과 비슷한 노력을 기울여선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벗어나기 어렵다. 낡은 책일수록 더 정성껏 먼지를 털고 한 권 한 권 일일이 수건으로 닦아 진열해야 한다. 때론 버려야 할 책도 있고, 다른 곳에 기증할 책을 따로 선별하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서 느닷없이 미스터리가 생긴다. 15년 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우리 책방은 헌책방치고 책이 많은 편이 아니다. 대략 5000권 정도다. 그런데 왜 매일 책 정리를 해도 자꾸만 새롭게 정리할 부분이 생기는 걸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는 책 정리 무한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나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손님들과 의견을 나눠보았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기 쉽지 않기에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을 살핀다. 그래서 책 좋아하는 손님들도 나와 비슷한 걱정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각자 책 정리를 어떻게 하는지 묻기로 한 것이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헌책방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자기 집에 있는 책 정리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뼛속까지 투철한 이과 정신으로 무장한 나는 손님들의 책 정리 실패 원인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드디어 확고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책 정리를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리를 안 하기 때문이다!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손님들 대다수는 자주 책 정리를 시도한다. 책장에 있는 책을 다 끄집어낸 뒤 버릴 것, 헌책방에 팔 것, 주변 사람들에게 나눌 것을 선별한다. 시작은 좋다. 하지만 이렇게 30분 정도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책에 빠져들어 읽게 되는 것이다! 책 정리를 하는 중이란 사실도 잊은 채 몇 시간이고 책만 보고 있다. 호기롭게 시작한 책 정리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결국 책은 모두 다시 책장에 들어간다.
돌이켜보니 나도 똑같다. 책 정리를 시작하면 왜 전에는 관심도 없던 책이 그렇게 재미있게 읽히는지 모를 일이다. 목차만 대강 훑어보고 정리하려고 했지만, 목차를 보면 서문에 끌리고 서문을 읽다 보면 이내 본문에 빠져드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정리는 또 내일로 미뤄진다. 이렇게 15년 동안 무한 반복의 세월을 보냈다.
올해는 책을 정리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하지만 괜찮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면 책 정리를 핑계 삼아 뜻밖에도 재밌는 책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으니까. 그러니 책을 짊어지고 사는 애서가들이여, 책 정리를 못 하는 건 그대들의 문제가 아니다. 책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 국민일보 2023.01.21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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