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여고 도서관에서 사서로 잠시 일했다. 내가 일한 곳은 고교 도서관치고 장서량이 상당했고 크기도 널찍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할 고등학생들이 여길 올까 싶었는데 일을 시작하고 보니 예상과 달리 도서관은 쉬는 시간마다 북적거렸다.
재밌는 건 오로지 책을 목적으로 오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넓은 책상과 편한 의자가 있고, 선생님들은 별로 없는 도서관에 아이들은 매점 다니듯 들락거렸다.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서가 사이에서 한참을 속닥거리다가 가는가 하면 내게 우르르 몰려와 실없는 수다를 떠는 무리도 있었고, 조용히 혼자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도 있었다. 그 모습들을 보며 이 공간의 존재 이유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달라졌다.
도서관에 체류하는 대부분 시간을 딴짓으로 보내는 아이들도 몇 번에 한 번씩은 눈에 띄는 책을 집어 들었다. 책 빌리는 친구와 함께 왔다가 같은 책을 따라 빌려가는 아이, 주스를 물고 어슬렁거리다 상품이 걸린 독서 퀴즈 공고를 보고 의욕 넘치는 눈으로 서가를 뒤지는 아이, 매일 도서관에 왔는데 책을 한 번도 안 빌린 게 사서 선생님에게 미안해 오늘은 뭐든 빌려 가겠다는 아이, 세 번을 빌렸는데 매번 못 읽어서 이번엔 꼭 끝까지 읽겠다며 두꺼운 고전을 가져오는 아이들이 늘 있었다.
이듬해 시에서 예산을 삭감하는 바람에 반 년쯤 일하다 그만두어야 했지만, 도서관의 가치와 효용을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더 강렬하게 체감한 시간이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큰 도서관보다 가까운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속속 등장한 '작은 도서관'이 유독 반가웠던 건 그런 기억 때문이었다. 책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던 이에게 집 앞 도서관은 책과의 첫 번째 접점을 만들어줄 좋은 장소가 될 터였다. 독서 여건을 보장받기 어려운 약자나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쉽게 모여 놀고 책을 볼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은 문화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중요한 커뮤니티였다. 공공 도서관이 미처 챙기지 못한 골목의 시민들에게, 정보 서비스 면에서 일종의 모세혈관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 서울시는 5억 원 남짓한 작은 도서관 지원 예산을 전면 폐지했다. 대구시가 같은 결정을 내린 지 일주일 만이었다. 이유는 흔하고 단순했다. 예산 낭비 방지. 소식을 듣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낭비라니. 이용자가 적다면 증진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지나친 난립이 문제였다면 지원 기준을 개편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이를 모두 '낭비'로 규정했다.
공공 영역의 존재가치는 당장의 이용량보다 그것 외의 대체재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 존재가 공동체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를 우선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의식주와 달리 박탈당한 이들이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인지하기 어려운 정보-문화적 영역이라면 하한선을 더욱 낮춰야 한다. 도서관이 책을 읽는 사람뿐만 아니라 '읽을 사람'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서울을 무려 '세계 5대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던 시장이, 새해 벽두부터 작은 도서관을 위협하고 있다. 책값조차 아까워하면서 대체 어떤 문화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걸까. 코미디도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
- 한국일보 2023.01.21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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