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8-09 13:06
김병주 회장, 사재 300억 기부 서울시립도서관 짓는다
   http://www.mk.co.kr/news/stock/view/2021/08/767791/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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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MBK파트너스 본사에서 진행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도서관 기부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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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최대 개인기부액
서대문구에 2025년 개관


◆ 김병주 MBK 회장 인터뷰 ◆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의 창립자이자 파트너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58·사진)이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들어설 서울시립도서관 건립을 위해 300억원의 사재를 쾌척했다. 개인 기부금만으로 서울시립도서관이 지어지는 첫 사례다. 이는 서울시 기준으로 가장 많은 개인 현금 기부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예우 차원에서 도서관 이름을 '서울시립 김병주도서관'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김 회장은 지난 6일 서울시청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시 관계자, 김 회장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립도서관 건립을 위한 300억원의 기부금을 서울시에 전달했다. 김 회장은 2019년 서울시의 도서관 건립 계획을 접하고 사재 출연 의사를 서울시에 전달했다.

서울시립도서관은 당초 서울시 예산으로 건립될 계획이었으나 김 회장의 전액 기부로 조성될 예정이다. 그의 기부는 기업이나 재단을 통하지 않고 순수한 개인 현금을 털어낸 것이어서 더욱 가치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은 12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지역 도서관에서 영어와 미국 문화를 처음으로 익히면서 도서관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그리고 언젠가 성공하면 모국에 도서관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미국 월가 근무와 MBK파트너스 설립을 통해 억만장자로 올라선 그는 미국 이민 46년 만에 그 꿈을 구체화했다. 김 회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여건이 허락하면 더 많은 도서관을 짓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며 '개인들의 기부 사례가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기부자의 뜻을 존중해 서울 시민들이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서대문구 가재울재정비촉진지구 내에 들어설 도서관은 연면적 9003㎡(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된다. 올해 국제 설계 공모를 시작으로 설계 용역을 거쳐 2023년 6월 착공하고 2025년 10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등 6학년때 나홀로 美 유학, 도서관은 지금의 나를 만든 곳…자산가들 개인 기부 늘었으면

서울시립도서관 건립에 사재 300억 쾌척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북미에 2500개 도서관 건립한
철강왕 카네기 존경스러워
아내와 뜻모아 MBK장학재단 설립

성공은 나 혼자 만드는 것 아닌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이룬 것

한국의 역사·문화 알리고 싶어
20년간 틈틈이 글 써 자전소설 출간


동북아시아 최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58)은 인수·합병(M&A) 업계에서 '냉철한 승부사' '미다스의 손'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코웨이, 오렌지라이프, 대성산업가스,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 등 조 단위 인수와 매각을 잇달아 성공시켰고 사모펀드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MBK파트너스의 운용자산 규모는 245억달러(약 28조원)에 달한다. 은둔형 최고경영자(CEO)로 꼽히는 그가 지난 6일 가족과 함께 서울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건 다소 의외였다. 행사 명목은 서울시립도서관 건립에 김 회장이 사재 300억원을 쾌척하는 것. 그는 서양의 개인 기부문화가 한국에서도 확산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매일경제는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MBK파트너스 본사에서 김 회장을 만나 거액 기부 배경과 인생철학, MBK 운영 포부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본인 이름으로 도서관이 건립된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를 텐데.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하다. 누구나 원할 때 들러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됐으면 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마중물이 돼 한국에 개인들 기부 사례가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저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이사회 멤버로 5년째 재임 중인데 미술관의 한 해 운영 예산이 3억달러 정도 된다. 이 예산의 100%가 개인 기부만으로 조달된다. 뉴욕시나 연방정부에서 지원받는 건 한 푼도 없다.

―서양에선 기부가 많고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들은 기부에 대한 자세가 '왜 해야 하지(why)'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걸 왜 물어보냐(why not)'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일종의 겸손함이라고 본다. 성공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사회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성공하려면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많은 시간의 노력에 더해 플러스 알파로 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부 방법 중 도서관 건립을 택한 이유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제가 살던 뉴저지주 체리힐의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책과 사랑에 빠졌다. 학교를 마치면 매일 2~3시간씩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미국에 도착해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는데 미국 문화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 나에게는 공부방이자 놀이터였던 것이다. 혼자 책을 읽으며 영어를 배웠고 역사 정치 스포츠 등을 익혔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소설책을 출간할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런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보니 어른이 되면 도서관을 차려 지역 주민들을 위해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지어지는데.

▷서울시가 보유한 도서관 건립 가능 용지가 두 곳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북가좌동이다. 제가 유학가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신촌에서 보냈고 아내는 북아현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지역이다. 2019년 서울시의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를 우연한 기회에 접했고 서울시와 의기투합해 기부를 추진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종이 활자책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다. 활자책을 접할 수 있는 도서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부 계획이 또 있는지.

▷여건이 맞으면 지역사회 곳곳에 더 많은 도서관을 짓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철강왕'으로 알려진 미국 US스틸 창업자인 앤드루 카네기를 평소 존경한다. 카네기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도서관 보급의 개척자 역할을 했다. 그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 건립한 도서관이 25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카네기는 미국 땅으로 이민을 와 처음 정착했던 피츠버그에서 시작해 미국 전역에 도서관 문화를 확산시켰다. 영어로 '임팩트 기빙(impact giving)'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열정과 관심이 있는 분야에 깊이 있게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저와 아내는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2007년 설립하게 된 게 MBK장학재단이다.

―자전적 영문 소설(Offerings·헌정)을 작년에 냈는데.

▷한국 역사와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주인공 이대준이 느끼고 생각한 부분은 제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소설이다. 소설이 상상을 자극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파워 오브 메타포(은유의 힘)'라고 하지 않나. 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 거의 20년 넘게 걸렸다. 아무래도 본업으로 바쁘다 보니 틈틈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기도 아홉 살 때부터 50년 가까이 써오고 있다.

제 인생의 의미를 정리하는 데 글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한 30대 중반에 썼던 부분을 읽어 보면 월가를 중심으로 한 탐욕주의와 사회에 대한 분노에 대해 말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던 거 같다. 시간이 흘러 50대 중후반에 쓴 부분을 읽어 보면 작가인 저도 많이 지쳤는지 분노라는 게 많이 희석되어 있더라. 30대와 50대에 쓴 글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소설을 더 쓸 생각이 있나.

▷그렇다. 지금도 쓰고 있다. 하지만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다. 애초 출판사와 계약한 게 2권이었다. 첫 번째 소설이 어떻게 하다 보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출판사에서는 후속 작품을 내 달라고 계속 재촉하는데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韓 사모펀드 시장 역동적…위기직후 큰 투자기회 있다


한국 대기업 올림픽 메달리스트 수준
기술 못지않게 경영진 능력도 탁월
중소기업 성과는 미흡해 아쉬워


―최근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보면 한국 기업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지 궁금하다.

▷한국 기업과 경영 시스템에 대해 좋게 평가한다. 일본이 1980년대 IBM이라면 21세기 대한민국은 구글·페이스북에 비유할 만하다. 그만큼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역동적이라는 점을 해외 투자자들이 높게 평가한다. 반면 한국 기업들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더라.

―20년간 한국 기업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나.

▷많이 성장하고 성숙해졌다. 특히 대기업 리더와 경영진을 보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고 본다. 마치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나 할까. 반도체, 휴대폰, 가전, 자동차 등 분야에서 세계적인 회사를 일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만큼 값지고 인정받아야 할 점이다. 다만 중소기업들이 다른 선진국만큼 활발하지 못한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중소기업 리더들의 분발도 필요한 것 같다.

금융 부문에선 사모투자펀드(PEF)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절대적인 시장 규모로 보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큰 편은 아니지만 정부의 철저한 감독과 지원 덕분에 역동적으로 성장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PEF 투자 집행 규모는 1.3%로 미국(3.2%)이나 영국(3%)에 비해서는 낮지만 일본(0.6%)보다는 훨씬 앞선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다.

―대규모 투자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고민도 많을 것 같다.

▷결국은 투자 경험이 중요하다. 성공 경험도 중요하지만 실패했던 경험도 소중하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양궁 선수들이 하룻밤에 세계적 수준이 된 건 아니지 않나. PEF 투자도 비슷하다. 저도 지난 23년간 PEF업계에서의 투자 활동을 돌이켜 보면 ING생명, 코웨이, 한미은행,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 등 여러 성공 사례가 있지만 몇몇 실패 사례도 있다. 아픈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배웠다. 어떤 것에 투자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투자하지 않느냐도 중요하다.

MBK는 전통 산업군 가운데 해당 부문 점유율 1·2위 기업들이면서 현금창출능력이 좋은 기업들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다. PEF는 가치창출 전략을 잘 세우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경영진 능력이 중요한데 한국에는 우수한 경영자가 많다는 게 고무적이다. 거의 일본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경영자들이 기업가정신을 좀 더 발휘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제조굴기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세가 무섭다. 우리 기업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국 한국도 일본이 걸어온 길로 가야 한다. 밸류(가치) 사다리를 계속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발굴해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기술에서 앞서가려면 연구개발(R&D)에 많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매출의 3% 정도를 R&D에 쏟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일본(3.3%)에 버금갈 정도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래야만 밸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인건비로는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과 경쟁이 안 된다.

―팬데믹이 PEF 투자 활동에 미친 영향은.

▷코로나19가 산업 전반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고 본다. 다만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추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온라인을 통한 빠른 배송을 선호해왔고 어차피 산업 방향도 그렇게 가고 있었는데 팬데믹 이후 이 같은 추세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PEF 입장에선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 과거 금융위기 당시 경험에 비춰보면 위기 발생 후 1~2년 사이 가장 좋은 투자 성과가 나왔다. 기관투자자들도 그 부분을 기대해 MBK와 같이 과거 성과가 좋은 운용사들에 자금을 더 많이 맡기고 있다. MBK가 지난해 팬데믹 상황에서도 65억달러 규모 5호 바이아웃 펀드 모집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팬데믹 이후 투자 기업 성과가 더 좋아진 사례가 있나.

▷일본에서 투자한 아코디아 골프 체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퍼블릭 코스를 운영하는데 50·60대 장년층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현금창출능력이 증가했고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MBK파트너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규모면에서 뿐만 아니라 투자 성과면에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아시아 최고 PEF 운용사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 다음은 PEF 운용업계에서 세계적인 리더로 발돋움하고자 한다. 마치 세계 경제 무역 시스템 중심에 아시아가 있는 것처럼 금융시장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MBK파트너스도 세계적인 시장 리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한층 인정받는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김병주 회장은…자산 28조원 굴리는 사모펀드업계 '대부'


亞 M&A시장 휩쓸어

1963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58)은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부친의 권유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펜실베이니아 소재 해버퍼드대에서 영어학 학위를 취득한 그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첫 직장인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 인수·합병(M&A) 업무를 시작했고 1997년 살로몬스미스바니로 자리를 옮겨 아시아 최고운영책임자로 일했다. 김 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40억달러 규모 외평채를 발행하는 작업을 도왔다.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 공동회장의 끈질긴 제의로 1999년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칼라일의 아시아 회장으로 취임한 김 회장은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해 큰 주목을 받았다. 칼라일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과 2005년 MBK파트너스를 설립해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과 캐나다공무원연금 등 대형 투자자로부터 16억달러를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한·중·일 무대에서 승부사적 기질을 발휘하면서 대형 딜을 잇달아 따냈다.

28조원에 달하는 운용자산을 굴리면서 아시아 PEF 업계의 대부로 평가받는 김 회장은 자선사업가이자 소설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2007년 사재를 출연해 MBK장학재단을 설립했고 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카네기홀에서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면서 후원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달에 뉴욕시립도서관 이사회 멤버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2010년에는 자신이 졸업한 미 해버퍼드대 기숙사 건립을 위해 2000만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해 한때 문학도를 꿈꾸기도 했다. 가장 큰 취미가 책 읽기와 글쓰기일 정도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사위다.

김 회장이 이끄는 MBK는 설립 이후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3개국 관련 기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MBK는 지난해 4월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중국 2위 렌터카업체 이하이를 인수한 데 이어 중국 1위 렌터카업체 선저우쭈처의 지분 100%를 확보했다. MBK 일본팀은 2017년 일본 내 170개가 넘는 퍼블릭 골프 코스를 보유한 아코디아 넥스트 골프라는 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매일경제. (대담)황인혁 증권부장, (정리) 강두순 기자. 202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