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6-03 16:45
[사람&] “책과 사람 잇고 소통하는 전시 펼쳐요” 개관 5주년 맞은 송파책박물관의 김예주 전시 담당 학예사
   http://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17165.html [286]

(사진1)5월14일 송파구 가락동 송파책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 앞에서 김예주 학예사가 ‘인쇄, 시대의 기억을 품다’ 전시 리플릿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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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노래책 등 약 10회 전시 맡아
여러 세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게 기획·운영

“관람객이 더 즐겁게, 더 많이 누리길”

우리나라 최초 공립 책 박물관 ‘송파책박물관’이 개관 5주년을 맞았다. 이젠 하루 평균 1천 명의 관람객이 찾는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동안 송파책박물관에서는 상설전시 ‘책과 독서문화’를 비롯해 노래 책, 교과서, 잡지 등을 주제로 다채로운 기획·테마 전시가 약 10차례 열렸다. 전시들은 ‘너무 재밌어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다’는 등의 반응이 있을 정도로 관람객의 발길을 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엔 소장 외서를 활용해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 사이 외국인들이 기록한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재조명하는 ‘웰컴 투 조선’ 기획전시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올해는 고려부터 현대까지 700년의 인쇄사를 다룬 ‘인쇄, 시대의 기억을 품다’ 전시를 8월까지 개최한다.

송파책박물관의 모든 전시는 개관 때부터 전시 담당으로 일해온 김예주(41) 학예사의 손을 거쳐 선보였다. 그는 전시 주제 정하기부터 자료 조사·수집, 전시 공간 연출, 도록 만들기까지 전체 과정을 맡아왔다. 14일 송파구 가락동 송파책박물관에서 만난 김 학예사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전시를 준비한다”며 “관람객들의 좋은 평가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실제 매주 월요일 집계하는 전시 관람 만족도 통계를 보면, 평균 96%를 넘을 정도로 높다.

송파책박물관 전시의 특징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공감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2021년 ‘교과서, 우리들의 이야기’ 전시 역시 여러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소재로 구성했다. ‘폐허 속에 피어나는 희망’ 코너에서는 한국전쟁 때의 피란학교, 천막학교, 노천학교 등 이야기를 사진, 영상 등에 담았다. 김 학예사는 “전쟁기 학창시절을 보냈던 분들을 섭외하고 인터뷰했다”며 “미군군용텐트에서 수업받다 너무 더워 나무 그늘로 옮겨 공부한 얘기, 종이가 귀해 ‘백로지’를 사서 32번 접어 한 땀씩 꿰어 공책을 만들었던 얘기 등 생생한 기억을 모아 소개했는데 반응이 좋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전시 공간에서 오감으로 느끼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김 학예사는 “책이 담고 있는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해 관람객들이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전시를 준비한다”고 했다. 글과 사진, 이미지와 함께 영상, 음향을 곁들이고 만들기 체험 등으로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게 구성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인쇄, 시대의 기억을 품다’ 전시에서는 색다른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책의 표지에 무늬를 찍어내는 ‘능화판’을 직접 인쇄해보는 코너에서는 관람객이 목판과 종이에 밀랍을 묻힌 뒤 밀돌로 밀어 책 표지를 찍어보는 경험을 한다. 그는 “책에서나 봄 직한 조선시대 책 표지를 직접 찍어보며 신기해하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전시 공간을 관람객이 오래 머물고 싶은 기분 좋은 곳이 될 수 있게 꾸미는 데도 그의 공이 들어간다. 협업 기관과 의논하면서 각 코너가 갖는 상징성과 색상을 매치해 정하고 팬톤 컬러(미국 팬톤사에서 만든 기준색표집)와 페인트 컬러칩도 보면서 어울리는 색을 고른다. 그는 “전체 동선이나 컬러, 조명 등 인테리어 요소를 많이 고려한다”며 “벽면 색을 다소 파격적으로 정해서인지, 전시 리뷰에 색상과 그래픽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기획부터 전시까지엔 대개 1년6개월 정도 걸린다. 그는 기획 땐 소장품 종류와 양이 전시하기에 적합한지, 대중이 원하는 주제인지 등부터 살핀다. 주제를 정하기 위해 평소 책과 관련한 소재나 이슈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초등생 아이와 함께 거의 매주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둘러보기도 한다. 김 학예사는 “무엇보다 관람객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온라인에 올라온 후기 등도 부지런히 챙겨본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박물관에서 전시나 유물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어, 학예사 일은 그에겐 천직이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의 학예연구원으로 시작해 대학 박물관을 거쳐 석사학위와 정2급 학예사 자격증을 땄다. 시립박물관 등을 거쳐 2018년부터 송파책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18년째 해오는 일이지만 새로운 과제가 주어질 때 느껴지는 부담은 어쩔 수 없이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는 “일기를 쓰며 걱정 등을 털어내기도 하고 아쉬웠던 점을 관람객들이 좋게 평가해줘 위안을 얻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책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앞으로 편집자, 번역가 등에 대해 전시도 해보고 싶어 한다. 편지, 동화책 등을 주제로 다뤄볼 생각도 있다. 무엇보다 송파책박물관이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길 바란다. 김 학예사는 “박물관은 관람객과의 만남으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며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전시로 찾는 이들이 더 즐겁게, 더 많이 누릴 수 있게 노력해나가려 한다”고 했다.

- 글 이현숙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2024.5.31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