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02-12 13:13
[우리 동네 이런 서점] [3] 한남동 블루도어북스 - 예약하셨나요? 여기는 책 한 권과 쉬어가는 '호텔'
   http://www.chosun.com/culture-life/book/2025/02/04/SDPTGC2BQFBNHHJV66Y… [4]
예약하셨나요? 여기는 책 한 권과 쉬어가는 '호텔'
[우리 동네 이런 서점] [3] 한남동 블루도어북스

김진우 블루도어북스 대표는 “고객들이 우리 서점을 ‘2시간 이용 가능한 호텔’이라 여겼으면 좋겠다”면서 “책은 판매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이곳을 찾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서울 한남동의 은행 건물 주차장, 건물 뒷문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니 미로 같은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를 반쯤 지나자 ‘조금만 더 오시면 곧 블루도어북스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벽에 붙어 있었다. 파란색 크레용으로 ‘Exit to Bluedoorbooks(블루도어북스로의 비상구)’라 휘갈겨 쓴 액자가 걸린 묵직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50평(165㎡) 규모의 공간이 펼쳐졌다. 은은한 조명, 나지막한 음악, 군데군데 놓인 의자와 탁자, 책이 가득 꽂힌 책장…. “서점을 찾아오는 일 자체가 독특한 경험이 되도록 일부러 ‘숨어 있는 장소’를 골랐어요.” 김진우(33) 블루도어북스 대표가 말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블루도어북스는 북카페를 겸한 예약제 서점이다. 손님들은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고, 서가의 책들을 구매할 수도 있다. 이용권 가격은 2시간에 2만원. 한 타임당 최대 10명 입장 가능하며 평일엔 오후 1~9시, 주말엔 낮 12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여는데 거의 만석이다. 김 대표는 “도쿄 지브리 미술관 같은 취향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손님들에게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 호텔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블루도어북스의 핵심은 ‘취향’과 ‘공간’이다. 손님들이 취향에 따라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구획했다. 테이블 아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 놓은 해리포터 코너, 천체망원경과 함께 우주 관련 책들을 모아놓은 코너, 반 고흐·에드워드 호퍼 등의 화집을 전시해 놓은 아트북 코너, 김 대표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을 서가에 꽂은 ‘진우의 서재’…. 손님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코너의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공간에 드리운 취향과 공명하며 책을 읽는다.

입구에는 겉옷을 보관할 수 있는 옷장을 놓고, 가구와 조명을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처럼 감각적으로 배치했다. 은은한 향을 피워 후각을 통한 경험도 제공한다. 음료는 서점 이름을 연상시키는 푸른 색조 잔에 담아 안성 유기 티스푼과 함께 낸다. 손님이 입장할 때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처럼 즐겁고 명쾌한 곡을, 퇴장할 때는 추억을 상기시키는 곡을 골라 튼다. 김 대표는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즐거움의 농도가 달라지도록 선곡한다. 계절에 따라 플레이리스트를 바꾼다”고 했다. “서점의 콘셉트나 기획의도를 많이 물어보시는데 딱히 없어요. 그런 걸 만들면 거기 갇혀버리거든요. 가구도 제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고객 취향에 맞췄어요. 고객들은 비싼 가구에 관심이 없어요. 그보다 물성과 이미지, 아우라에 반응합니다.”

헌책과 새 책을 적절히 섞어 진열하고 판매한다. 새 책은 도매상을 통하지만 중고책은 우연히 만났을 때 구입한다고 했다. 해외에 나가면 가장 먼저 서점에 들러 책부터 산다. 절판 도서는 구매가에 20~30%를 붙여서 판다. ‘몇 날 며칠 아파하며 읽은 전혜린’ 코너에 민서출판사에서 1985년 출간된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절판본 등이 놓여 있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있는 서가에는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책을 뒤집어 꽂아 놓았다. “세계문학은 많이 알려진 책이라 제목을 알면 지식정보에 기대서 읽게 되잖아요. 우연성에 기대 책을 읽는 경험을 주고 싶어 뒤집어 놓았어요.”

김진우 대표는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다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자퇴했다. 우산을 디자인해 팔기도 했고, 어머니가 하던 경기도 안성의 분식집을 리모델링해 제육덮밥 파는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책으로 관심을 돌렸다. “고3 때 수능 끝나고 모두들 들떠 혼란스러운 가운데 우리 반 1등이 혼자 조용히 ‘위대한 패배자’라는 책을 읽고 있는 걸 봤어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여 저도 따라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온라인으로 책 판매를 하다가 2022년 서울역 근처에 ‘도하서림’이라는 예약제 서점을 차렸다. 입소문이 나며 인기를 끌자 확장 이전한 곳이 블루도어북스다. 지난 6월엔 북촌에 워크숍 스튜디오 블루도어북스홈을 열기도 했다. 서점 이용객의 70%는 여성, 방학 때는 대학생들이 주로 찾고, 방학이 지나면 30~40대 직장인이 찾는다. 그렇지만 항상 전 연령대를 염두에 둔다. “각 코너 설명문이 담긴 QR 코드 등 서점에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적용할 때마다 엄마를 모시고 와요. 60대인 엄마에게 난해하면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나이, 옷차림, 말투 등으로 고객을 판단하지 않고, 모두에게 각자의 낭만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잠시 잊고 지낸 소중함을 다시 만나게 해 주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블루도어북스의 PICK!]

●딱 한 권만 판다면=영국 일러스트레이터 찰리 매커시 그림책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인간과 동물의 우정을 주제로 하는데, 1주일에 20~30권 팔린다. 소년이 “네가 했던 말 중 가장 용감했던 말은 뭐니?”라고 말에게 묻자 “‘도와줘’라는 말”이라 답하는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책 읽으며 듣기 좋은 음악=아이슬란드 록밴드 시귀르 로스의 ‘아예티스 비욘’. ‘좋은 시작’이라는 뜻인데 몽환적인 곡조, 자기 자신에게 너무 취해 있었다는 걸 반성하는 가사 등이 좋다.

●책 읽으며 마시기 좋은 음료=겨울엔 코코아. 음료는 판매하지 않고 무제한 제공하는데, 그렇다고 손님들이 무한정 마시지 않는다. 자기 기쁨의 농도만큼만 드시는 것 같다.

-조선일보 2025.2.4.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