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전 작품 절반 흔적없어
3년 설득끝 소장자한테 넘겨받기도
“문화는 공유해야 가치 더 커지죠”
“필름을 버리지 말자.”
세계 65개국의 영상자료원으로 구성된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은 올해 이런 슬로건을 내놨다. 뭔가 우스꽝스런 문구 같다고? 영화문화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실제 상황은 꽤 심각하다. 국내 현실만 봐도 그렇다. 1980년대 이전 제작된 우리 영화 3443편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636편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한국전쟁 때와 일제강점기 삶과 풍경을 엿볼 수 있는 1960년대 이전 영화는 더 심각하다. 전체 538편 가운데 461편이 사라졌다.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한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해온 수많은 영화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 권영택(40) 과장은 이렇게 사라진 한국 영화를 찾는 ‘필름 추적자’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그는 영상자료원에서 10년 넘게 영화 자료를 보존·관리하는 업무를 해왔다. 훼손이 심한 필름의 응급처치 정도는 모두 직접 할 정도다. 영상자료원 수집부는 사라진 한국 영화를 발굴하는 전담부서로 2007년 생겼다. 현재 7명으로 권 과장이 실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영상자료원 수집부와 함께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으로 넘쳐나던 대구의 불량소년들의 삶을 영화화한 <태양의 거리>(민경식 감독, 1952년)를 수집해 영상자료원 수집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 찾은 <태양의 거리>는 한국전쟁 중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 14편 가운데 처음 실체가 확인된 것이어서 의미가 컸다. 실존 여부가 소문으로만 떠돌던 필름을 민 감독의 유가족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2009년. 첫 만남에서 반응은 냉랭했다. 무려 3년여간 ‘밀당’(밀고 당기기)이 이어졌다.
“앞서 접촉했던 사설단체와 개인 수집가가 필름 소장자들을 상대로 매매를 시도하면서 자료를 빼앗아가려는 듯한 인상을 줬던 것 같아요.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는 소장자 쪽에서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렸어요.”
권 과장은 우선 대구에 사는 소장자들을 찾아 ‘얼굴도장’부터 찍었다. 필름 훼손을 막는 약품 처리를 해주고, 낡은 필름상자도 교체해줬다. 이후에도 때때로 직접 집을 방문하거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안부를 물으며 설득을 거듭했다. 소장자들은 결국 마음을 열었다. 자료원은 필름을 넘겨받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을 한 뒤, 지난달 소장자 가족들을 초청해 감격스런 재상영회를 열었다.
자료원 수집부는 올해 들어 <태양의 거리> 외에도 배우 남궁원 주연의 첩보물 <순간은 영원히>(1966)와 <비련>(1967)을 찾아냈다. 이들 영화는 1960년대 홍콩과 합작으로 만든 액션, 멜로물인데 문헌으로만 존재하다가 40여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한해 한편도 발굴하기 어렵다는 희귀 필름을 올해 3편이나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발굴을 기다리는 한국 영화들이 아직 1800여편에 이른다. 불과 50여년 전, 한국 영화의 전성기로 꼽히는 1960년대 영화들조차 절반 이상이 사라진 데는 ‘영화 필름은 문화자산’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탓이라고 권 과장은 말한다.
“옛날에는 영화 필름을 조각조각 잘라서 밀짚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하고, 필름에 은 성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은을 추출하려고 이걸 녹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영화가 영상으로 존재할 때 진정한 보물이란 걸 몰랐던 거죠.”
그나마 과거에는 지방 영화관의 필름창고나 원로 감독들의 집에서 희귀 필름이 나오곤 했지만, 이마저도 세월이 흐르면서 옛날 이야기가 됐다. 게다가 영화 관련 단체나 뜻있는 소장자들이 선뜻 내놓던 영화 자료들은 이미 상당수 확보된 만큼, 지금으로선 어느 것 하나 손쉽게 발굴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탓에 수집부의 발굴 작업은 대부분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이뤄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성 극영화 <미몽>(1938)도 일제강점기 한국 영화가 만주를 거쳐 중국에 소개됐다는 단서 하나만 들고, 중국전영자료관을 뒤져 찾아냈다. 김기영 감독의 <주검의 상자>(1955)와 신상옥 감독의 <꿈>(1955)의 메이킹필름에 해당하는 영상은 미국 국립문서기획관리청(NARA) 문헌리스트를 모조리 검색해 발굴했다.
허탕을 치는 경우는 일상다반사다. 도사견 개집 속에 들어 있던 필름을 찾아오거나, 1t 트럭 분량의 필름을 검사해도 가치있는 자료를 한건도 못 건지는 게 흔한 일이다. 정체불명의 필름이 포함됐으니 주변 폐기물들을 함께 치워달라며 자료원 쪽으로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0여년 전에는 일본의 한 수집가가 사망한 뒤, 한국 영화사의 걸작으로 알려진 나운규의 <아리랑>을 찾기 위해 북한 쪽과 경쟁적으로 이 수집가의 창고를 뒤져봤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던 일도 있다.
권 과장은 수많은 미발굴 영화들이 어디선가 훼손돼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했다. 자료원의 제한된 인력과 비용으로 발굴에 한계가 있는 만큼, 개인 소장가들의 관심과 참여로 창고에서 잠자는 ‘은색 필름통’의 존재를 제보해 달라는 당부도 했다. 한편으로는 걸작으로 꼽히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처럼 북한이 영상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영화들은 북한 쪽과 교류를 통해 소중한 자료를 함께 나눌 수 있으리란 기대도 하고 있다.
“희귀 필름 소장자들이나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이들이 이런 정보를 적극적으로 나눠야 합니다. 문화 자산은 여러 사람과 공유될 때 가치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 한겨레신문 20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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