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집 안에는 2대의 CCTV가 작동하고 있다. CCTV는 복권 진열장이 있는 방 안 전체를 24시간 살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69년 9월 15일 주택복권이 처음 발행됐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모든 복권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경기 가평군 양평면의 문태조(68) 씨가 그 주인공이다. “구입비용을 한 장에 100원으로만 계산해도 제가 갖고 있는 게 300만 장 정도 되니까 총 3억 원은 된다고 봐야 할 겁니다. 물론 장당 500∼1000원짜리도 약간 있지만요.” 그러나 그의 복권 수집 철학에서는 단호함까지 느껴진다. “복권을 돈으로 생각하면 수집할 수가 없어요. 일종의 취미이자 기부이며, 한 주 동안의 ‘희망’을 얻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요.” 그가 모은 복권은 10여 종류, 300만 장에 이른다.
문 씨는 지난 1966년 1군 하사관 학교에 들어가며 군생활을 시작했다. 2년 뒤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한 그는 베트남에서 돌아와 1969년 9월 15일 첫 발행된 주택복권 구입을 시작으로 ‘복권 마니아 인생’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복권을 모을 뜻은 없었다고 한다. 그 이전부터 우표를 수집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는데, 주택복권 첫 회차를 구입한 이후 조류, 건축, 화초, 인물 등 테마·시리즈별로 나오는 이 복권의 매력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모은 것이 주택복권 마지막 회차인 1473회(2006년 3월 26일)까지와 그 이전·이후 발매 복권을 망라하게 됐단다. “제가 모은 복권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백과사전 같다는 기분이 들어요. 모으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고, 어떻게 저렇게 많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그럴 때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그가 복권을 수집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제일 쉬웠기 때문이다. 판매점이 많아 아무데나 가면 살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하지만 그는 “금전적인 것도 안 노렸다면 거짓말”이라며 솔직한 속내를 내보이기도 했다. 문 씨의 설명을 바탕으로 해도 그가 소장하고 있는 복권의 총액을 가늠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주택복권 첫 회차의 현 시세만 귀띔해줬다. 30만 원 선이라고. 특히 체육복권(즉석) 등 안 긁은 것(미확인)도 5000여 장에 달해 ‘당첨’의 가능성까지 따진다면, 그 값어치는 무한대에 이른다. 어쩌면 당첨금을 찾아가지 않은 복권이 그에게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문 씨는 복권을 긁는 순간 소장가치가 없어진다고 여기고 있다.
44년 동안 복권을 모아왔음에도 불구, 한 번도 1등에 당첨된 적이 없으니, 당첨 운은 지지리도 없다. 주택복권 사은행사(1년에 한 번씩 보너스로 하는 것) 때 승용차 4대 타 본 게 최고 성적이란다. 당시 P승용차 2대, R승용차 2대 등에 당첨된 적이 있는데, 세금만 500만 원 내고, 3대는 싸게 판 뒤 1대만 실제로 타고 다녔다고. 그러고는 주택복권 2등에 한 번 당첨된 게 상위 당첨의 전부다. “투자 대비 수익에서는 본전도 못 찾았어요. 당첨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안 되면 찢어버리고 그러지만, 저는 모으는 재미로 하기 때문에 비용이 들어가는 건 아깝지 않아요. 제가 도와줌으로써 복지기금 마련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도 있고요.”
비록 복권 수집 마니아지만, 당첨에 대해 전혀 욕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조상꿈, 돼지꿈, 대통령꿈까지 좋다는 꿈은 안 꿔본 게 없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꿈은 복권에 당첨된 꿈을 꿨을 때라고 했다. 또 돼지가 뛰쳐나오는 꿈도 좋아한단다. 그러나 사놓고는 당첨 여부를 모르고 지나간 때가 허다한 걸 보면, 역시 당첨 욕심이 그리 큰 것 같지는 않다.
당첨자와 구입자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당첨됐더라도 마음을 비우고 허황된 생각을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왕창 써버리는 경우가 많고, 이혼으로 이어지는 등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도 수차례 봤어요. 정직한 생활을 하고, 올바르게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헛된 생각을 하면 복도 금방 왔다 나가버리는 거 같아요. 또 복권을 사고 당첨을 바라는 모든 분들은 복권에 너무 의지하지 말았으면 해요. 행운은 하늘이 주는 거라고 봐요.”
문 씨가 가장 아끼는 복권은 주택복권이다. “시리즈별로 돼 있어 복권을 수집하는 동기가 됐기 때문에 유독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하나를 더 부탁하자 자신이 태어나기 바로 전해(1944년)에 발행됐던 ‘복표’를 꼽았다.
초기에는 가족 갈등도 많았다. 복권을 뭉치로 사다 보니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과 불화를 겪곤 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포기상태”라며 “월남참전유공전우회 동료나 친구들이 제가 모아놓은 걸 보고는 최고라고들 인정해주니 가족들도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그가 요즘 수집하고 있는 복권은 연금복권과 로또다. 특히 연금복권의 경우 그림이 좋고, 시리즈별, 세트별로 돼 있어 모으는 재미가 쏠쏠한 편이라고 소개했다.
‘복권인생’을 살아온 문 씨의 남은 희망은 복권 관련 기록으로 기네스북 등재에 도전하고, 제대로 된 전시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98, 2000, 2001년 등 3차례 지역 우체국에서 그간 모은 수십만 장의 우표와 함께 복권 전시회를 연 이후 지금까지 전시회를 못 열고 있다. 전시공간 확보가 녹록지 않은 때문이다. 요즘은 관심이 온통 전시관 마련에 쏠려 있다. 현재 보관장소로 사용 중인 집 안이 너무 좁은데다 환기 등 제반 여건이 좋지 않아 변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전시공간 확보에 도움을 줄 기관이나 개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또 1등 당첨 꿈도 버리지 않고 있다. 1등에 당첨되면 자신이 모은 복권과 우표를 번듯하게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어서다.
문 씨는 “취미생활이어서 부담은 못 느꼈고, 오히려 치매도 안 오고 건강에 도움이 됐다”면서 “인생을 마칠 때까지 단 하나의 희망은 복권박물관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며 빙그레 웃는다. (김윤림 기자)
- 문화일보 201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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