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 기자 출신 임원, 축구박물관 건립추진위원장, 축구역사문화연구소장…,
많은 직함이 있지만 이재형(52) 씨를 대표하는 것은 ‘축구용품 수집가’다. 그는 축구공에서 유니폼, 경기 티켓과 포스터는 물론 병따개 같은 작은 일상용품이라도 축구와 관련됐다면 주저없이 수집한다. 4만여 점의 컬렉션을 보유한 자타 공인 국내 최고의 ‘축구용품 수집가’인 이 씨는 “이제는 수를 세는 것조차 포기했다”며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축구 관련 용품을 모은 사람이 약 5만 점이라고 하는데, 오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면 기네스북 등재를 노려보려 한다”며 웃었다.
지난 4일 찾은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그의 집은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 색인 빨강과 흰색으로 가구와 벽면까지 인테리어를 해서 들어서자마자 ‘축구용품 수집가’의 집임을 실감케 했다. 집 안에는 축구장 모양의 발매트, 축구공 모양의 라디오, 축구공 무늬를 넣은 컵과 식기 등이 곳곳에 있는 등 이 씨의 집에선 그 어떤 것도 축구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3개의 방에는 이미 그가 수집한 축구 관련 자료와 서적, 자료사진 등으로 빼곡한 상태. 이 씨가 최초로 축구용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당시 한 은행에서 축구공 모양의 저금통을 나눠줬는데 그게 제 수집품 1호입니다. 저금통은 이사를 다니며 잃어버렸지만 그때의 감동만큼은 생생해요. 축구잡지에서 일하게 된 것은 수집과는 별개였지만, 수집활동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 1996년 그간 수집한 것을 놓고 처음으로 전시회를 했는데, 찾아오셨던 분들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품이면 더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수집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 이 씨가 수집한 품목들 중에는 한국 축구의 기념비적인 물품들이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 한국-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이 넣었던 ‘골든골’ 축구공을 당시 주심이었던 바이런 모레노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당시 소요된 금액은 모레노 주심과 공개하지 않기로 해 밝힐 수 없단다. 2004년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가며 모레노 주심을 만나러 에콰도르로 날아갔던 동기가 궁금했다.
“2003년 미국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서 ‘염소의 저주’로 100년가량 우승을 못하던 시카고 컵스의 모이세스 알루가 잡을 수 있던 파울 플라이를 관중때문에 놓치며 컵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됐어요. 분노한 한 팬이 그 공을 비싼 가격에 사들여 폭파해버렸는데, 그때 평소 2002년 경기에 치를 떨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 공을 입수해 폭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 공을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이후 이 씨는 당시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을 확정지었던 8강전 승부차기 때 쓰였던 공도 입수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유상 기증된 ‘16강 골든볼’과 달리 이 공은 그가 은행 금고에 보관하며 개인 소장하고 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작업이지만, 이 씨는 후원 없이 자비만으로 수집하고 있다.
“현재 제 개인 재산 목록 1호입니다. 당시 공을 챙겨간 경기 주심 가말 알 간두르를 찾아 이집트로 갔지만 그도 그 경기가 국제심판으로서 마지막 경기여서 공을 애지중지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설득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모든 수집을 자비로 하는 것은 이 일을 투자라 생각하지 않고 개인 취미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남의 돈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의 수집은 시간과 국경은 물론 이념까지도 초월한다. 그는 북한 축구대표팀과의 ‘금지된 만남’까지 가져가며 축구 유물을 수집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그해 9월인가 남북통일 염원을 담은 남북 평가전이 있었어요. 당시 북한 선수들이 입었던 유니폼이 갖고 싶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조성환 선수에게 유니폼을 꼭 교환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고도 조성환이 경기에 못 나설까, 나오더라도 중간에 교체될까, 부상을 입진 않을까 마음을 졸였습니다. 유니폼을 교환하려면 후반 종료시간에 경기장에 있어야 하니까요.”
조성환의 도움으로 북한 박영철 선수의 유니폼을 손에 넣었던 이 씨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단신으로 당시 북한 대표팀이 묵고 있던 숙소를 찾아간 그는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던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애걸복걸하며 양해를 구했고, 자신이 입수한 유니폼에 리정만 감독 이하 북한 대표팀 전원의 사인을 받는 ‘쾌거’(?)를 달성했다.
“당시만 해도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좋은 편이었습니다. 리정만 감독이 ‘좋은 일 한다. 잘 보관해 달라’던 말이 아직 기억나요. 이후 아시안게임에 다시 북한팀이 왔을 때 그동안 한국 매체에 등장했던 북한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 갖다 줬더니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답례로 사인 유니폼을 한 벌 더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 요원들을 따돌리거나 했는데 정말 ‘007작전’을 방불케 했습니다.”
이처럼 어렵게 수집한 물품이지만, 그는 자신의 컬렉션으로 크고 작은 전시회를 열거나 16강전 골든골처럼 외부에 기증하는 등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현재까지 그가 개최한 전시회는 15차례 이상. 그중 1번의 해외 전시회를 포함한 대규모 전시회도 10번이나 되고, 2014년엔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에서도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또 지난 6월엔 경남 창원의 합성초등학교에 축구역사관을 건립하는 데 수집품 상당수를 유·무상 기증하기도 했다. 나아가 최근 이 씨는 축구박물관 건립을 위해 뛰고 있다. 자신이 수집한 물품들을 제대로 된 박물관을 설립해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대표팀 출신 유명 축구선수와 경기도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이 두 곳 중 한 곳과 손잡고 건립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해외에 반출된 한국 문화재들을 모았던 간송 전형필 선생같이 해외에 있는 한국의 축구 관련 유물을 모으는 ‘축구계의 간송’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수많은 수집을 해왔던 그에게 또 모으고 싶은 게 있는지 질문해봤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담담하게 잊어진 음악가를 찾아나서는 빔 벤더스 감독의 로드무비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처럼 잊어진 아시아 축구 선수들을 찾아가 그들의 유물을 수집하고 싶다고 밝혔다.
“언제 한번 미얀마를 가고 싶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1년 당시 ‘박스컵’을 시작했는데, 그때 한국과 공동우승을 했던 미얀마(당시 국명 버마)는 윈몽, 몽몽틴, 몽몽 A, 몽에몽 등이 포진한 축구 강팀이었어요. 현재 모아놓은 당시의 자료사진과 필름이 꽤 있는데, 이 사진들을 아직 살아있을 역전의 용사들을 만나 전해주고 당시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그들에게만 있는 한국 축구 관련 자료가 있다면 또 받아서 수집하고도 싶고….”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이재형씨 희귀 소장품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8강행을 결정지은 축구공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4강행을 결정지은 축구공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미국전에서 부상당한 황선홍 선수에게 발라준 바셀린 병과 안정환의 축구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대표선수로 뛰었던 모리엔테스의 축구화 ▲‘축구 황제’ 펠레의 유니폼과 축구공. 친필 사인이 담긴 자서전. 각기 다른 언어로 번역된 펠레의 자서전 30여 권 ▲포르투갈의 ‘검은 표범’ 에우제비우의 축구공 ▲‘골 넣는 골키퍼’ 칠라베르트의 축구 장갑 ▲‘거미손’ 레프 야신의 축구화와 자서전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했던 고 김용식 감독의 작전 메모 외 다수
- 문화일보 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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